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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 시대 농산물 '유통혁명'... 시작은 '조직문화' 변화부터

기사승인 2020.05.28  17: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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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통발상] 농산물 유통 문제 해법을 위한 발칙한 생각

제도가 사람을 위해 존재하나, 사람이 제도를 위해 존재할까? 당연히 사람이 제도를 만들었으니 제도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작동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인 경우가 많다. 제도가 더 이상 제 역할을 못한다면? 당연히 사람이 제도를 만들었으니 고쳐야 한다. 한 번 만들어진 제도니 계속 따라야 한다면 제도가 사람을 괴롭히는 꼴이다. 사람은 반발하고 제도는 고쳐진다. 이걸 사람들은 ‘혁명‘이라고 부른다. 종교개혁은 교황을 신의 위치에서 사람의 자리로 돌려놨다. 봉건제와 절대왕정도 무너졌다. 영원히 해가지지 않는 영국이 만들어 놓은 식민 통치도 막을 내렸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이렇게 상식을 향해 굴러간다.

신선식품 소매 유통에서는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쿠팡과 마켓컬리라는 온라인 기업이 나와 이마트와 롯데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판매 점유율을 많이 가져왔다. 이미 온라인 구매가 대세였다. 여기에 올해 들어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가 늘면서 신선식품 온라인 판매도 크게 늘었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유통 공룡들도 서둘러 온라인 유통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다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그럼에도 농업계의 미스터리가 있으니 여전히 철옹성인 ‘농산물 유통시장’이다. 생산자-산지수집상-도매시장-중도매인-소매상-소비자로 이어지는 다단계 유통구조는 요지부동이다. 농산물 특성상 유통기간이 짧고 제품 표준화가 어려워 최적화된 게 현재 시스템이다. 다만 그 사이에 기술과 사업 환경의 엄청난 변화가 있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아이폰이 가져온 모바일 혁명, 가상현실-증강현실 등 새로운 기술, 고도화된 콜드시스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사람들의 소비형태, 도시의 기반시설 등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안 되던 것이 지금은 되는 시대다.

얼마 전 가락시장에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발표한 '가락시장 수산부류 유통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유통되는 수산물 중 일부가 도매시장법인을 건너뛰고 중도매인에 의해 수탁되는 비정상적 거래가 만연하고 있었던 것. 요약하면 이렇다. 경매에 의해 가격이 변동되는 시스템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출하자가 중도매인에게 정가 매매를 한다. 중도매인은 도매법인을 빼고 거래할 수 없으니 이들에게 사후 수수료를 지급한다. 도매법인은 제도의 변칙을 용인하고 통행료를 받은 셈이다. 이러면 왜 도매법인이 존재하느냐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도매시장시스템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음이 드러난 사례다. 공사의 김경호 사장은 “이번 수산시장 유통 실태조사를 통해 수산시장의 비정상적인 거래 관행이 드러났다.”면서 “이러한 관행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어민과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유통인과 협력하여 새롭게 수산시장 활성화를 추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유통 혁신이 이루어질까? 가락시장이 변하면 대한민국 농산물 유통 전체가 달라진다. 김 사장의 의지가 유의미한 성과를 낼지 두고 볼 일이다.

한 번 만들어진 제도니 계속 따라야 한다면 제도가 사람을 괴롭히는 꼴이다. 사람은 반발하고 제도는 고쳐진다. 이걸 사람들은 ‘혁명‘이라고 부른다. [사진=픽사베이]

이에 반해 농협은 혁신의 깃발을 들고 나섰다. 농식품부와 손을 잡고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온라인으로 농산물을 도매 유통하는 '온라인농산물거래소‘를 5월 27일부터 시범 운영하기로 했다.

온라인농산물거래소는 전국의 주요 생산자조직이 시스템에 사진 등 상품정보를 직접 등록하고, 다양한 구매자들이 참여해 시간과 장소의 제약없이 거래하는 온라인상의 농산물 도매시장과 같은 개념이다. 거래가 체결된 이후 상품은 직배송 된다. 거래의 편의성은 높아지고 중간 유통 비용은 절감된다. 상·하차 등으로 인한 감모·손실도 줄게 되면서 상품의 신선도는 높아진다. 무엇보다 유통량 조절 등을 통해 물량이 일시에 집중되는 현상을 완화함으로써 가격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농식품부는 온라인 경매의 단점인 ‘상품 품질 확인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한다. 표준 규격을 설정·운영하고 고화질의 사진 등을 제공하는 것에 더해 출하처에서 품질 기준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했다. 이번에 처음 시범 거래되는 양파의 경우, 일반적으로 거래의 기준이 되는 양파 구의 크기를 기준으로 표준 규격을 설정하고, 그 외에도 예건·큐어링 여부, 품종, 생산이력 등 품질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출하처별로 사전검수책임자를 두도록 하여 품질에 대한 검수를 강화했다. 품위저하 등으로 출하자와 구매자 간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분쟁처리 전담인력인 '산지주재원'이 적정성 판단 및 중재안 제시 등 신속한 처리를 도울 예정이다.

철저한 준비만큼 곳곳에서 일어날 돌발 변수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다. 종사자들의 조직문화가 기존 유통조직과 같다면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테니 우려가 되기도 한다. 사업의 혁신과 더불어 일하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농협은 최근 소통방식과 조직 문화에도 변화를 주려고 한다. 대표적인 게 농협 인재개발원의 애자일(Agile) 조직이다. 애자일이라는 말은 원래 프로그래밍 개발 방법론 중 하나를 일컫는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계획을 가지고 계획에 따라 단계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워터폴(Waterfall) 방식과 대비된다. 애자일 방식은 행동을 중시한다. 우선 시제품을 만들어보고 수시로 수정하고 보완해 최상의 결과물을 완성해 나가는 방식이다.

애자일 조직은 급변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 고객의 다양한 수요에 유연하고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경영방식으로 최근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다. 농협의 애자일 조직도 팀 간의 경계를 허물고 과제 중심의 수평적 의사소통을 통해 빠른 성과를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농협 인재개발원 전용석 상무는 “뉴 노멀 시대에 새로운 조직문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부서 내 스몰토크와 지속적인 협업을 통한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농협 비전 2025의 실현은 애자일 조직과 같은 변화를 위한 다양한 실천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새로운 ‘농협’을 위한 준비는 끝났다. 목표는 바로 섰고 조직문화도 바꾸려 한다. 혁신에는 용기와 희생이 필요하다. 이를 감내해야 이제 출발한 ‘김성희 호’는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시작한 ‘유통혁명’의 여정, 그 첫걸음에 박수를 보낸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저작권자 © 한국영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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