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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오션전략과 삼성, 그리고 농산물 유통 문제

기사승인 2019.11.10  23: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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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통발상] 농산물 유통 문제 해법을 위한 발칙한 생각

CEO 스코어의 발표에 의하면 2018년 기준 농협은 자산규모 59조 계열사 수 44개를 거느린 재계 서열 9위의 기업집단이다. 게다가 215만 농민조합원, 12만 명의 계열사 임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는 거대 조직이다. 이 큰 조직이 생기게 된 이유는 뭘까?

농업협동조합법을 보면 1조 1항 목적에 이렇게 쓰여 있다. “이 법은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을 바탕으로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의 향상과 농업의 경쟁력강화를 통하여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다. 농협은 농업인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고 농협중앙회가 100% 지배하고 있는 계열사들도 그들을 위해 복무해야 함이 옳다. 그런데 우리 농업인들의 앞날은 어둡기만 하다. 대한민국 농업은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다. 정부의 WTO 개도국 지위 포기는 우는 아이 뺨 때리기지 결정적 원인은 아니었다. 그럼 뭐가 문제인가?

농업인의 형편이 어려워지는 것은 농업이 도시민의 안정적 살림살이를 위해 가격 결정권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개발시대에 저임금 노동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저물가가 필요했고 당연히 농산물은 가격이 싸야 했다. 옳다. 국민 모두가 행복한 길이라면 농업인들도 희생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최근 박완주 의원이 제시한 농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34개 주요 농산물의 평균 유통비용률은 무려 49.2%였다. 소비자도 싸게 사는 것도 아닌데 농민들은 싸게 팔아야 하니까 돈을 못 버는 것이다. ‘유통’의 문제다. 

계속 이어지는 농협법 제2장 13조 ‘지역농업협동조합’의 목적을 보자. “지역농업협동조합(이하 이 장에서 "지역농협"이라 한다)은 조합원의 농업생산성을 제고하고 조합원이 생산한 농산물의 판로확대 및 유통원활화를 도모하며, 조합원이 필요로 하는 기술, 자금 및 정보 등을 제공함으로써 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향상을 증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 판로확대와 유통원활화를 도모하라고 만들어 놓은 게 (지역)농협이다. 

“난 한 놈만 패”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 속 유오성의 대사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선택과 집중’하라는 것이다. 경영학에서 말하는 ‘블루오션’ 전략이 이와 유사하다. 버릴 것은 버리고 핵심적인 것에만 집중해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게 우선이다, 그런 후에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이 아닌 블루오션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안정적으로 사업을 해야 한다, 그래야 승산이 있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농업협동조합법 상에서 농협이 해야 할 일을 보자. 농업 생산성은 높아졌고 필요한 기술도 충분하며, 자금-정보의 확보에도 어느 정도 공헌하고 있다. 그럼 여전히 농업인의 경제 사회 문화적 지위를 높이지 못하게 하고, 농업 경쟁력을 강화하지 못하게 하고 농업인의 삷의 질을 높이지 못하게 발목 잡는 건 뭘까? 뭘 빼고 뭘 강화해야 할까? 돈이 되는 농사가 되려면 역시 유통이 답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우수 브랜드 고향잡곡으로 유명한 나주 공산농협 김승배 조합장 [사진=공산농협]

벤치마크 사례가 있다. 나주 공산농협은 잡곡생산단지를 조직화하고 철저한 품질관리를 통해 조합원이 생산한 잡곡을 농협에서 전량 판매해주고 있다. 김승배 조합장은 “조합장실은 영농현장이고 업무는 잡곡 판매사원"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김 조합장은 “농협이 돈을 버는데 목적을 두면 은행과 다를 바 없다”면서, “조합원이 생산한 농산물을 팔아야만 농협도 동반 성장하므로, 정부와 지자체에서 못한 일들을 공산농협 직원들이 고통을 감내하고 열심히 일해야만 농가도 살고 결국 농협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허투로 들을 말이 아니다.  

농산물이 아닌 공산품 유통 형태는 요 몇 년 새 빠르게 변했다. 생산된 제품이 소비자 손에 도달하기까지 유통 단계는 계속 축소되고 있다. 도매-도도매-소매 등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이익을 나누던 건 옛말이다. 공급 과잉으로 가격 경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유통 단계를 축소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도태된다. 대표적인 게 전자제품이다. 과거 도소매 거래가 대규모로 이루어지던 용산전자상가는 이제 온라인 판매상들의 창고 겸 사무실로 변한지 오래다. 제조사-총판-소매상으로 유통단계가 단순화된 것이다. 

기업의 생존 전략도 문어발식 ‘다각화’에서 핵심에 몰입하는 ‘집중화’로 변하고 있다. 예컨데 삼성그룹은 IT, 바이오, 금융에 집중하고 있다. 나머지 계열사들은 매각하거나 사업을 축소하고 있다. 삼성테크윈 등 방산 분야를 한화에 넘긴 게 대표적인 케이스다. 왜 그럴까? 돈이 없어서? 천만에. 잘하는 것, 중요한 것에 집중해야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무섭게 쫓아오고 미국 실리콘 밸리는 계속해서 혁신하고 있다. 천하의 삼성도 ‘넛 크래커’ 사이에 끼인 땅콩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절박함에서 내린 결단이었다. 그렇게 해서 삼성전자는 IT 분야 전세계 시가총액 8위의 기업이 됐다. 삼성은 이렇게 하고 있다. 

WTO 개도국 포기로 성난 농심은 폭발 일보 직전이다. 개방화의 거센 파도에 맞서 민족의 먹거리 산업을 지킬 리더십은 어디에 있을까? 전남 순천농협 강성채 조합장은 지난 1일 농식품신유통연구회가 주최하는 신유통 조직화포럼에서 ‘유럽연합 PO제도와 국내 조직화 사례’에 대해 발표했다. 발표를 마친 강 조합장은 “이제 생산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급변하는 유통시장에 가장 적합한 형태의 판매유통시스템 구축으로 농업인이 제 값 받고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도록 농협에서 제 역할을 다 하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구성원이 뭘 원하는지, 맡은 자리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해야 하는지를 잘 아는 것, 이것이 리더십의 출발이다.

농협중앙회장 선거가 이제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조합원들의 민의를 받들고 있는 대의원들은 이 시점에서 농협이라는 거대 조직이 무엇을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거창하게 블루오션 전략을 들먹일 것도 없다. 유호성 말처럼 급할 땐 한 놈만 패야 싸움에서 이긴다. 차기 회장단이 ‘유통 문제 해결’에 올인 한다면 농사도 돈이 되는 사업이 될지 모르겠다. 아니,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강한 농업을 만드는 첫 걸음이 될 수도 있다. 농업의 ‘삼성’이 되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비전을 보여 달라는 소리다. 보릿고개도 넘고 우르과이 라운드의 파고도 넘어 여기까지 온, 뚝심 있는 농협이기에 하는 말이다. 과거의 농업-농촌을 블루오션으로 이끌 새로운 리더십의 탄생을 기대하며 응원한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저작권자 © 한국영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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