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판결, 상속농지 처분 의무 없어... 헌법 명시 '경자유전' 원칙과 상충
[사진=농촌진흥청] |
[한국영농신문 백종호 기자]
지난 2019년 초 대법원에서는 매우 의미심장한 판결이 내려졌다. “「농지법」 제6조 제2항 제4호, 제7조 제1항에 의하면 상속으로 농지를 취득한 경우에는 농업경영을 하지 않더라도 1만 제곱미터까지는 소유할 수 있는 것이므로, 「농지법」 제10조 제1항에 따라 상속농지를 처분하여야 할 의무를 부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로써 비농민의 농지 소유를 국가가 널리 공인한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그런데 2019년 대법원 판결과는 큰 온도차를 드러내어 온 게 바로 우리 헌법이다. 헌법 제121조 제1항은 그 유명한 ‘경자유전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소작제도 역시 금하고 있다. 제2항에서는 농업생산성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하고 있다. 어쨌거나 1994년 제정된 농지법은 원칙적으로는 비농민의 농지 취득뿐만 아니라 소유자체까지를 금지해 왔던 것.
하지만 2019년 대법원 판결 이전에도 농지법은 1994년 제정된 이래로 여러 차례 개정을 거듭하며 누더기 「농지법」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헌법과 「농지법」은 ‘경자유전' 원칙을 명시하고 있지만, 현실에선 내내 ‘농지소유 규제 완화’쪽으로 고쳐지면서 경자유전 원칙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농지법」 개정의 주요 골자만 살펴봐도 그런 사실을 곧장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 1994년 「농지법」 제정 당시부터 ‘농지 취득시 농지 소재지 사전 6개월 거주 요건’을 폐지했다. 도시 사람도 얼마든지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것. 이후 1996년엔 20킬로미터 통작거리(통학거리, 통근거리와 같은 개념으로 농지와 거주지의 거리) 제한이 없어졌고, 2003년엔 농업법인의 농지 소유 허용, 주말·체험 영농을 위해서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됐다. 2015년엔 바이오ㆍ벤처기업 연구소의 농지소유 허용도 이루어졌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과연 ‘농업인, 농민 - 비농업인, 비농민’ 의 구분은 어떻게 이루어져야할까를 놓고도 말들이 많다. 현재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시행령 제3조에서 농업인은 ‘ 농지 경작자, 농산물 판매자, 농업 종사자, 농업법인 고용자’ 등을 포괄하는데, 농업인은 ▲1,000㎡(302.5평) 이상의 농지를 경영.경작하는 사람, ▲농업경영을 통한 농산물의 연간 판매액이 120만원 이상인 사람,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 ▲농업법인의 농산물 출하·유통·가공·판매 활동에 1년 이상 계속해 고용된 사람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지난 20년 동안 수차례의 법률 개정을 통해 농업인의 범위는 확대되고 자격기준은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 사실상 농업인의 범위만 엄청나게 확장됐다고 봐도 그리 틀리지 않은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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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난해에도 올해에도 계속 농업 및 농업인 정의 재정립을 놓고 간담회나 국가기관 회의가 이어진다. 지난해 9월엔 아예 대통령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위원장 장태평, 농어업위)가 ‘농업 및 농업인 정의 재정립’을 위한 현장간담회를 열었다. 현행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기본법)상 농업인 정의 중 경지 면적 1,000㎡와 연간 농산물 매출액 120만 원, 90일 이상 종사요건은 1990년대 제정된 기준으로, 변화하는 농업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아서 혼란스럽다는 이유에서다.
경영체인 ‘농가’와 종사자인 ‘농업인’의 구분이 불명확하고, 직접지불 수급자격, 농지 소유자격, 조세 감면 범위 등 정책·제도 운영에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터져 나왔다. 아울러 농업을 정의함에 있어 “농작물 재배업, 축산업, 임업 및 이들과 관련된 산업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으로 하여, 농업의 정의가 여전히 전통적인 생산업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말했다. 가공, 유통, 체험 등 농촌융복합산업은 물론, 수경 양액재배, 수직농장, 대체식품 등 새로운 생산방식을 정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올해도 마찬가지. 지난 7월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전라북도를 방문할 즈음, 농식품부는 또 '농산업'을 법적 개념으로 정의하고, 올해 안에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을 발의하고 '농업인'의 개념 역시 재정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농지법」에서는 농업인(농가)의 정의를 ‘0.1ha 농지경작, 90일(직접) 종사, 120만원 농산물 판매액’이라는 식으로 최소 기준을 설정해놓고 있어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
농어업위도 지난 8월 9일 '미래를 위한 혁신, 농업인 및 농업경영체 정의 개편방안'이라는 주제로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장태평 농어업위 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농업인 기준이 너무 오래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금 급변하고 있는 농업 여건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농업인에 대한 정의가 우리 농업 경쟁력에 문제가 된다면 이 또한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토론회의 결론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농업인과 농업경영체 정의로부터 파생되는 현실적인 문제와 부작용으로 인해 현재의 농업인 기준은 합리적 규모로 변화가 필요하다. “라는 원론적 의견일치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매년 토론회를 하고 공청회를 해도 한 걸음도 더 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의견. 헌법에 명시된 '경자유전'의 원칙만 초라해 보이는 온갖 토론회와 행정당국의 민심 떠보기는 더는 필요 없어 보인다.
그동안 긴 세월동안 이도 저도 못한 채로 아무런 구체적 조치가 없었기에 하는 말이다.
백종호 기자 bjh@youngno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