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기후위기 대응 14개 댐 건설 발표... 시민단체, 야당, 지자체 일제히 반발
[한국영농신문 백종호 기자]
대규모 댐을 10여개 신설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나왔다. 전 국민적 의제로 떠오른 댐 건설을 놓고 설왕설래 찬반 의견들로 어지럽다. 농업예산이 전체국가예산의 3%에 미치지 못하는 마당에 농민이 바라는 농업용수 관리 방안과 댐의 상관성을 주장하기에도 버겁다. 하지만 농업용수가 전체 용수(물) 사용량의 60%를 넘는다는 통계를 놓고 보면 여전히 물이나 물관리는 농업 쪽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다.
현재 농업계에서는 수 십년 전에 만들어진 저수지가 태반. 농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약 70~80%가 만들어진지 40~50년 넘은 저수지들이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 저수지들은 농촌 고령화가 심각한 것처럼 노후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는 것. 저수지의 노후화가 가져올 수 있는 사태를 예상해보면, 날로 변화무쌍한 기상이변에 원만히 대비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아니 염려스럽다.
충북 음성 맹동저수지 [사진=한국농어촌공사] |
◇ 정부, 전국 14개 댐 건설 발표... "극한호우, 최악의 가뭄 등 기후위기 대응"
어쨌거나 정부는 최근 전국에 크고 작은 댐 14개를 건설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또한 지난 문재인 정부의 ‘신규 댐 건설 백지화’라는 기조를 뒤집은 것. 지난달 30일 서울 정부청사에서 신규 댐 건설 계획 발표에 나선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14년 만에 신규 다목적댐 건설을 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극한호우, 최악의 가뭄 등으로 기후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는데도 근원적 대응을 위한 다목적댐 건설은 2010년 보현산댐이 마지막이다. (그러므로) 신규로 기후대응댐 건설을 추진하겠다”. 여기에 "추가 물그릇이 없이는 신규 물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장관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신설될 예정인 댐은 한강 4개소, 낙동강 6개소, 섬진강 2개소, 영산강ㆍ금강 각 1개소 씩이다. 댐이 건설되면 1년에 약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약 2억톤~3억톤의 물을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댐을 짓기 시작해도 앞으로 10년 정도가 걸리므로 더 이상 늦출 여유가 없다며 댐건설을 서둘러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정부 주도의 치수(治水)의 중요성을 한껏 강조하는 발언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른바 ‘기후대응댐’ 14개소 신설을 추진하며 환경부는 조만간 지역 설명회, 공청회를 열어 해당지역과 인근 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환경부 측은 1"4개소 댐 건설에 있어서 9개소 정도가 지자체 스스로 댐 건설을 신청한 경우"라고 설명하며 나름 자신감을 표출하고 있는 모양새다. 환경부는 타당성 조사를 마치고 오는 2027년부터 댐 건설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충남 부여 반산 저수지 [사진=한국농어촌공사] |
◇ 시민단체, 야당, 지자체 일제히 반발... 일부 지자체 주민 '찬성' 목소리도
그렇다면 해당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의 반응은 어떨까? 환경운동연합은 정부가 기후대응댐 후보지를 발표하자마자 "기후문맹적 발상"이라는 입장을 냈다. 환경운동연합은 "정부의 (댐신설) 계획은 기후위기를 볼모로 토건 산업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꼬집고 “홍수 방어, 용수 공급 등의 정부 주장들이 근거가 빈약하고 효과도 의심된다”고 덧붙였다. 쉽게 말해 “하지 말라”는 뜻.
예산 낭비라는 야당 민주당의 지적도 이어졌다. 강득구 의원(더불어민주당, 안양 만안구)은 환경부의 기후대응댐 건설비가 약 12조원 정도 들 것이라며 이는 다른 사업보다 비용 대비 효과가 적은 사업이라고 질타하고 나섰다. 강 의원은 내년 준공예정인 총저수량 180만㎥인 원주천댐 총사업비가 688억 원인 것을 감안하면, 기후대응댐 14개 건설비는 약 12조원일 것이라고 추산했다. 강 의원은 "홍수 피해 예방이라면 하수관로 개선이나 산사태 예방 제방 강화 등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 충주댐 건설 당시 수몰 피해를 겪었던 충북 단양군은 환경부의 기후대응댐 건설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김문근 단양군수는 환경부 발표 이후 “우리 군에서 신청한 적도 없다. 그런데 후보지로 정해진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김 군수는 “향후 주민 설명회, 공청회, 여론조사 등 지역 주도의 의사결정이 이뤄져야만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강원도 양구도 반대 의견을 냈다. 강원 양구군의회는 양구 수입천댐 건설 반대 결의문을 채택했는데 “군민의 생존권과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수입천댐 건설을 막을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주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흥원 양구군수는 “소양강댐 건설 이후 군민들이 수없이 많은 고통을 겪어왔다. 이를 생각한다면 또 다른 댐을 건설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찬반이 팽팽한 지역도 있다. 충남 청양 지천댐 부근 주민들이다. 반대 의견은 앞서 언급했던 지역과 대동소이하다. 찬성 의견도 만만치가 않다. 지역 성장의 동력이 될 것을 왜 미리 반대하느냐며 댐 신설 반대론자들과 한 치 물러섬 없이 맞서고 있다. 이에 청양군수는 찬성이냐 반대냐의 입장표명을 하지 않고 주민들의 의견을 조심스레 경청중이다.
이렇듯 정부 입장에 대한 찬반 의견이 나오는 마당에 다시 농업계의 의견을 종합해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전체 용수 사용의 60%를 농업 쪽에서 쓰고 있는 마당에 홍수 예방 뿐 아니라 농업용수 확보 차원의 저수능력 확대에도 정부가 댐건설과 마찬가지의 관심과 열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댐건설이 기후대응 차원에서 시급하다면, 노후저수지 정비 역시 하루가 급한 농업계의 물관리 과제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라는 뜻이다.
농민들은 ▲정부가 취약한 노후 저수지에 대해 적극적인 투자를 해 줄 것, ▲농업용수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줄 것, ▲농민이 직접 물 관리에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등의 의견을 오래전부터 정부에 요청해왔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14개 기후대응댐 건설’이다.
백종호 기자 bjh@youngno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