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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다리 짚은 군 급식 문제 해법... 손쉬운 '보급의 외주화'

기사승인 2021.10.28  22:4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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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농업기반, 국가안보 직결.. '먹거리통합지원센터'로 공공조달체계 구축해야

[한국영농신문 이병로 기자]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배식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군대 속담이 있다.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게 원문인데 ’배식‘의 중요성을 패러디한 말이다. 그만큼 군대에서는 먹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잘 훈련된 군대와 우월한 신무기, 신출귀몰한 작전 능력 등이다. 여기에 추가될 요소가 ’병참‘이다. 앞선 조건들에 더해 전쟁을 지속할 수 있도록 음식과 무기 등 물자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승리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가난한 나라가 부자나라를 이기는 경우가 드문 것도 이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군사력이 우월해도 병참선 확보에 실패해 전쟁에서 진 사례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수나라의 고구려 원정 실패다. 

612년 1월 수나라 황제 양제(煬帝)는 직접 제2차 고구려 침공을 지휘했다. 육군 113만, 해군 4만으로 꾸려진 사상 최대의 원정군이었다. 요동 벌판에서 수나라 군대를 맞은 고구려군은 주변을 불태우고 성을 지키는 작전을 취했다. 공격부대에게 식량 조달 기회를 박탈하고 장기전으로 지치게 하는 일종의 청야(淸野)전술이다. 수군 지휘부는 30만 명의 별동대를 선발해 직접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을 치는 속전속결로 대응한다. 여기에는 치명적인 위험이 있었다. 빠른 속도로 진격하다보니 보급부대를 대동할 수 없었다. 병사들은 각종 무장에 직접 먹을 양식까지 짊어지고 머나먼 평양성을 향해 한 달 이상 행군을 해야 했다. 이미 요동 지역 전투에서 지친 병사들은 중도에 양식을 버리거나 파묻는 경우도 있었다. 평양성 근처에 도착한 수나라 병사들 수중엔 군량미가 별로 없었다. 게다가 대동강을 거쳐 진격 예정이던 수나라 해군은 이미 고구려군에 의해 대패해 추가 보급도 어려운 상태였다. 

평양성에 도착한 수나라 육군은 극심한 피로와 물자 부족 상태에서 전투에 임해야 했다. 여기에 고구려 군의 매복 전술에 선봉대가 몰살되면서 전의를 상실했다. 결국 퇴각을 결정하는데 고구려군은 이들을 뒤쫓아 살수에서 대승을 거둔다. 30만 명의 별동대 중 살아서 돌아간 자가 고작 2700명. 수나라 주력군이 궤멸된 것이다. 이후 수나라는 추가 원정을 시도했지만 연이은 전쟁 동원에 불만을 품은 농민 봉기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결국 618년 수양제가 살해되면서 수나라는 멸망의 길로 접어든다. 전쟁에서 효율적인 병참선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례다. 

서욱 국방장관이 지난 4월 24일 해군 2함대를 방문해 격리병사들에게 지급되는 도시락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국방부]

최근 부실한 군 급식이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지난 4월부터 코로나19 예방격리 장병에 대한 부실급식 논란이 연이어 보도됐다. 이를 계기로 기존 군 급식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여러 차례 나왔다. 정부도 ‘병영문화개선 민관군 합동위원회’를 구성해 군 급식 문제 해법을 논의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10월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34회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는 ‘군 급식 개선 종합대책’이 발표됐다.

주요 내용을 보면, 우선 장병 중심의 급식 조달체계로 개선된다. 이에 따라 장병들이 원하는 식단을 먼저 편성한 후 식재료를 조달하는 ‘선 식단편성-후 식재료 경쟁조달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기존 농·축·수협과의 수의계약을 일정 기간 유예하되, 다양한 공급자가 군 급식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계약 물량을 단계적으로 축소한다. 이후 2025년부터는 식단편성 부대에서 최적의 공급자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쌀 소비 확대정책에 따라 의무적으로 급식하고 있는 쌀이 함유된 케이크, 햄버거빵, 건빵, 쌀국수 등 가공식품에 쌀 함유의무도 폐지되고 장병들이 선호하는 시중제품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축산물 계약도 ‘마리당’에서 ‘부위별·용도별 납품방식’으로 바꾸고 카레, 볶음요리 등 편성된 식단에 맞게 장병들이 선호하는 부위를 조리에 적합한 형태로 조달해 조리병들의 조리 준비 부담도 줄인다. 또한, 장병들의 선호도가 낮은 흰 우유 공급량을 단계적으로 줄여 초코·바나나우유, 두유 등 다양한 유제품을 장병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한다. 기본 급식비도 오른다. 정부는 2022년 기본급식비를 2021년 8790원 대비 25% 인상한 1만1천 원으로 편성하여 내년도 예산 정부안에 반영했다. 

이대로 되면 군 장병 중심 급식체제가 잘 정착될 수 있을까. 이번 정부안의 핵심은 식단을 먼저 짜고 식재료 구매에 경쟁체제를 도입해 더 싸고 질 좋은 급식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군 장병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먹이겠다는데 이를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바로 저가 경쟁으로 인해 급식의 질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값싼 해외 농산물 구매로 국산 농산물 조달 체계가 부실해질 가능성도 있다. 

국회 농해수위 소속 윤재갑 의원(더불어민주당 해남·완도·진도)은 지난 10월 6일 농식품부와 농협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인용해 “국방부의 조달체계 변경으로 인해 군 급식 품목의 74.6%를 수입산이 차지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사진=윤재갑 의원실]

국회 농해수위 소속 윤재갑 의원(더불어민주당 해남·완도·진도)은 지난 10월 6일 농식품부와 농협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인용해 “국방부의 조달체계 변경으로 인해 군 급식 품목의 74.6%를 수입산이 차지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윤 의원에 따르면, 국방부는 부식 조달 방법을 기존 농협을 통한 수의계약 방식에서 일반경쟁 입찰로 변경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OO사단 XX대대에서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최저가를 제시한 대기업 계열사 A푸드가 낙찰됐다. 문제는 이들이 납품하게 될 477개 품목 가운데, 356개(74.6%)가 수입산이라는 점이다. 전자입찰 공고 자료를 보면,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마늘, 호박, 배추김치 등을 중국, 미국, 캐나다, 호주, 브라질 등지에서 수입한 재료로 군 급식에 사용됐다. 윤 의원은 “군 급식 문제는 전·평시를 고려한 국가안보와 식량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함에도 국방부가 부실 급식의 원인을 애꿎은 곳에서 찾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와 농민단체들의 우려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군 급식 개선을 위한 전국 공동대책위원회’는 10월 12일 성명서를 통해 “경쟁체계는 필연적으로 저가경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건강하고 질 높은 식재료 공급은커녕 각종 납품비리와 출처를 알 수 없는 부실 식자재 공급, 다단계 납품체계로 인한 하청공급처 피해, 생산 농·축·어가 피해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고 성토했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도 10월 19일 “지난 2019년 국방부와 농식품부, 해수부는 군 급식 품질개선 및 국내산 농축수산물 소비확대, 장병 식생활교육을 위해 상호협력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면서 “군 급식은 국방안보와 연계되는 만큼 군 장병 체력증진을 위해 현행 국산 농축산물의 공급방식이 필수적임을 관계부처도 인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지난 50년간 군납을 독점적으로 유지해온 농·수협의 책임이 크다. 현행 농산물 군납 체계는 1970년 체결한 ‘군 급식 품목 계획생산 및 조달에 관한 협정’을 통해 정해졌다. 90여개의 군납 농·수협이 1년 단위의 수의계약을 통해 사전에 정해진 금액으로 농수축산물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매년 급식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다음해 먹을 품목의 기준량을 정하면 여기에 급식의 메뉴를 맞추는 식이다. 그런데 애초 취지와 달리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계획생산·계약재배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시장 매입 후 납품했다. 게다가 중간유통업자인 일명 ‘단지장’에게 납품 물량 구매를 불법적으로 대행시키기도 했다. 유통단계가 복잡해지면서 단가 상승의 요인이 됐다.

국방부도 급식문제를 안일하게 대처해 왔다. ‘국방부 자체감사 결과 처분요구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급식 관련 국방부 자체감사에서 급식 품질과 관련된 감사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장병들의 영양과 건강을 챙기기 위한 문제의식이나 개선 노력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코로나 19로 격리 병사에 대한 부실 급식이 드러나자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한 게 고작 경쟁입찰을 통한 ‘보급의 외주화’다.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는 9월 27일(월) 서울 여의도 농업정책보험금융원 1층 회의실에서 ‘군급식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농특위]

전문가들은 군 급식에도 공공성을 통한 조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9월 27일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회는 ‘군 급식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오열 전국먹거리연대 공공조달 소위원장은 “군 급식 개선 기본방향은 가격중심 시장경쟁입찰에 따른 식재료 공급 방식이 아니라 먹거리통합지원센터를 통한 공공조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당장은 농식품부 및 각 지자체의 공공급식지원조례에 따른 먹거리통합지원센터의 군 급식 참여방안을 마련하고 지자체와 인근 군부대 사이에 협약을 맺고 센터를 통한 공급가능 품목 선정과 생산자 참여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대순 포천시친환경농업인연합회 회장은 “학교급식에서와 같이 수요를 중심으로 한 농가 계약재배 확대와 저가 경쟁이 아닌 공공성이 보장되는 조달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면서 “생산자부터 장병까지 군급식 공급을 위한 단계마다의 각 주체가 참여하는 민주적 거버넌스 협의체계 구축도 제도화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미 구축된 학교 급식 체계에 군 급식 문제를 풀 힌트가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강한 군대도 양식 보급이 3일만 끊어지면 전멸한다. 평상시에 충분히 대비해야 하는 것이 전력 증강의 핵심이다. 우리는 자주국방을 위해 주요 무기를 국산화하고 적자가 나더라도 군수 공장을 유지한다. 전쟁 나서 다급해진 나라에게 과연 타국은 무기를 제 때, 제 값에 팔까?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은 국제질서의 냉혹한 현실이다. 식량도 마찬가지다. 평시에는 시장경쟁 논리로 싸고 질 좋은 외국산 농산물로 조달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하지만 전시에 지금처럼 싸고 편리하게 외국에서 군량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인지는 냉정히 판단해 봐야 한다.

한번 무너진 농산물 생산 체계는 곧바로 복원될 수 없다. 안정적 군 조달체계도 유지하고 국산 농산물 소비도 늘릴 묘안을 찾아야 한다. 밥을 제대로 못 먹이면 군대든 국가든 망한다. 보급에 실패해 전쟁에 패하고 나라가 거덜 난 수나라의 교훈은 21세기에 대한민국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저작권자 © 한국영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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