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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 밖의 반전, ‘세렌디피티’로 얻은 글로벌 콘텐츠 경쟁력

기사승인 2021.10.16  2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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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류 세계화 일등 공신, 중국의 ‘한한령’... 케이푸드, 수출 다각화로 폭풍 성장 중

[한국영농신문 이병로 기자]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말이 있다. 특정한 실험을 하다가 실패했는데 전혀 예기치 않은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을 '세렌디피'라고 부른다. 이 말은 스리랑카(실론)을 가리키는 페르시아어 '세렌디프(Serendip)'에 영어의 명사형 접미사 '~ity'를 붙여 만든 조어(造語)다. 영국의 작가 호레이스 월폴(Horace Walpole)이 1754년 친구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세렌디프의 세 왕자(The Three Princes of Serendip)' 이야기를 소개했다. 월폴은 스리랑카의 세 왕자들이 '우연성과 재치를 통해 미처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이 단어를 처음 썼는데 이게 유래가 됐다. 이후 세렌디피는 '우연히, 뜻밖에 얻는 행운'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쉽게 말해 ‘황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았다’는 말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이다. 플레밍이 배양실험을 하는 도중에 실수로 잡균인 푸른곰팡이를 혼입했는데 이게 인류를 구한 항생물질을 발견하게 된 사건이 됐다. 전자레인지의 탄생도 비슷하다. 본래 레이더 장비를 연구하던 레이시온 사의 한 공학자가 주머니 속에 든 초코바가 녹아 버렸음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에 착안하여 2년 후 레이더에만 쓰던 극초단파로 음식을 가열하는 상품을 시장에 내놓았는데 이게 전자레인지다. 3M사의 포스트잇 메모지도 실패한 접착제를 활용한 것이다. 떼었다 붙여도 흔적이 남지 않는 기능을 활용해 새로운 기능을 가진 상품을 만들었다. 

아메리카에 상륙하는 콜럼버스 일행을 그린 기록화. (디오스코로 푸에블라 작 1862) [사진=위키피디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는 신항로 개척도 우연에서 시작했다. 당시 유럽은 중동의 신흥 강국인 오스만투르크 제국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인도로부터 수입되는 향신료 운반경로의 중간에 자리잡은 오스만투르크는 유럽의 거래상들에게 세금을 부과했다. 가격은 올랐고 그나마도 공급이 원활치 않았다. 육식을 주로 하는 유럽인은 이미 향신료의 맛에 매료되어 있었다. 어떻게든 직접 인도로 가는 길을 뚫어야 했다. 콜럼버스는 동쪽 항로 대신 서쪽 바다로 계속 가다보면 일본을 지나 인도에 다다를 것으로 판단했다. 마침내 그는 1492년 10월 현재 아이티의 히스파니올라 섬에 도착했고 그곳을 인도라고 불렀다. 이 지역을 서인도제도라고 하고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디언으로 칭하게 된 유래다. 이후 스페인은 그곳을 식민지로 만들고 향료가 아닌 막대한 금과 은을 강탈해 국부의 원천으로 삼았다. 원래 찾던 것보다 더 값진 것을 찾게 된, 일종의 세렌디피티다.

세렌디피티와 비슷한 ‘역효과’도 있다. 한국의 콘텐츠 수입과 유통을 금지한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이 좋은 사례다. 2016년 주한미군은 경북 상주에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 배치했다. 중국 정부는 사드의 레이다 배치가 자국의 중요 군사시설을 감시하는 사실상 적대행위로 간주하고 미국과 한국 정부에 강력 항의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즉각 보복 조치를 취했다. 중국 정부는 제일 먼저 한국에서 제작한 콘텐츠 또는 한국인 연예인이 출연하는 방송과 광고 등을 송출하지 못하도록 했다. 한류 금지령 이른바, ‘한한령‘이다. 이와 함께 각종 행정명령으로 중국 내 한국 기업의 활동에 제약을 주었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중국 내 반한·혐한 정서에 불을 붙였다. 중국 각지에서 한국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재중 한국인에 대한 적대적 행위도 늘어났다. 비공식적 조치였지만 한국 경제에 타격을 주기엔 충분했다.

중국 정부는 사드의 레이다 배치가 자국의 중요 군사시설을 감시하는 사실상 적대행위로 간주하고 미국과 한국 정부에 강력 항의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즉각 보복 조치를 취했다. 중국 정부는 제일 먼저 한국에서 제작한 콘텐츠 또는 한국인 연예인이 출연하는 방송과 광고 등을 송출하지 못하도록 했다. 사진은 사드 레이다인 AN/TPY-2 레이다 [사진=위키피디아]

한국 기업의 피해는 컸다. 중국 선양시에 대규모 쇼핑몰을 짓고 있던 롯데그룹은 건축이 중단되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현대 자동차는 2017년을 기점으로 중국 내 판매량이 급락하고 있다. 삼성 휴대폰의 시장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져 이제 1% 미만이다. 한국 배터리 기업은 중국의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됐다. 없어서 못 팔던 한국 화장품의 인기도 사그라들었고, 대규모 중국인 여행단도 발길을 끊으며 서울 명동은 죽은 상권이 됐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사드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한류의 최대 소비시장이었다.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의 판권을 사들이려는 중국 방송사와 배급업체들은 줄을 이었다. 아이돌 그룹의 대규모 콘서트와 팬 사인회에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하지만 한한령 이후, 한국 배우와 가수가 나오는 콘텐츠는 중국 내에서 자취를 감췄다. 가장 큰 해외 시장, 중국이 날아가면서 한국 콘텐츠 산업은 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한한령 이후 5년이 지난 지금, 한국 콘텐츠 산업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영화 <기생충>은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다. 지난 4일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마이 유니버스’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1위에 올랐다.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와 함께 만든 이 곡은 BTS가 핫100 차트 1위에 올려놓은 6번째 작품이다. 불과 1년 1개월 만에 이룬 기록이다. 전설적인 그룹 비틀즈도 같은 기록을 내는데 1964년부터 1년 2주이 걸렸다. 이제 BTS는 세계 팝 음악을 이끄는 리더가 됐다. 드라마는 또 어떤가. 9월에 출시된 <오징어게임>은 전세계 넷플릭스 순위 1위에 올랐다. 서비스를 하고 있는 84개국 모두에서 1위를 차지한 대기록을 세웠다. 세계 각국에서 드라마 속 장면을 체험하고 따라하는 유튜브 영상도 계속 올라온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탈 중국화, 탈 아시아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999년 중국에서 방영된 드라마 <별은 내가슴에>는 안재욱을 내세워 한류 열풍을 만들었다. 그 뒤로 중국의 경제성장은 한류의 소비 여력을 크게 끌어 올렸다. 해외 진출의 1순위이자 흥행의 목표시장은 항상 중국이었다. 하지만 한한령으로 철퇴를 맞은 한국 콘텐츠 업계는 결단을 내려야했다. 결론은 시장 다각화였다. 미국·유럽 등 세계 문화의 심장부를 겨냥하고 도전하기 시작했고 결과는 대성공을 거뒀다. 만약 중국의 한한령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아직도 중국 시장의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국 정부에게 감사(?)할 일이다. 우연한 실패와 좌절이 성공을 견인한, ‘세렌디피티’의 사례가 됐다. 

올해 3분기 누계(잠정) 농식품 수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3% 증가한 61억 9200만 불을 달성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지속되고 물류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거둔 선전이라 더욱 값지다. 사진은 샤인머스켓 [사진=농촌진흥청]

. 무엇보다 수출 지역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청신호다. 농식품부가 지난 7일 발표한 시장별 수출액 증감률을 보면, 신북방 33.6%(2억 3390만불)과 신남방이 21.8%(13억 6380만불)로 수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중국 15.7%(9억 4830만불), EUㆍ영국  11.1% (3억 2340만불), 미국 5.1% (9억 2540만불 ), 일본  6.0%(10억4410만불) 순이었다. 수출 금액으로 보면 여전히 일본·중국·미국 위주지만 여타 지역에서의 성장세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한류처럼 다각화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먹거리는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헐리우드 영화를 즐겨보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코카콜라와 햄버거를 먹었다. 제2의 번성기를 맞고 있는 한류의 특징은 특정 국가와 지역을 넘어 미주,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인의 보편적인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BTS의 음악을 들으며 한국 라면에 김치를 먹는 외국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우리 먹거리가 한류 문화라는 마법 양탄자를 타고 날아가려는 형국이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건강과 치유를 선사할 한국 농식품 산업의 선전을 기대한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저작권자 © 한국영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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