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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법 위반과 억울한 의원님, 사퇴가 답일까?

기사승인 2021.09.02  22: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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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지개혁 원조는 이승만 대통령... 공직자들 농지법 대수술로 청렴함 보여줘야

[한국영농신문 이병로 기자] 

이번에도 ‘농지법’이 문제였다. 부친의 농지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윤희숙 의원은 결국 의원직을 던졌다. 그의 사퇴를 두고 정치권의 평가는 “책임지는 정치인의 용기“와 ”속보이는 사퇴 쇼“로 갈린다. 이번 일은 윤 의원 말처럼 철저하게 수사를 받아 진실을 밝히면 될 일이다. 윤 의원이 부친 농지 매입 과정에 개입하거나 사전에 인지한 사실이 없다면 윤 의원에게 죄를 물을 수도 없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의문이 있다. 도시에 사는 80세 노인이 스스로 농사를 짓는다며 약 3300평(1만871㎡)의 농지를 구입했고, 일 년에 쌀 7가마니를 받고 농지를 빌려줬다. 윤 의원 사퇴 발표 후 2~3일 만에 여러 매체가 취재한 결과 확인된 사실이다. 돈만 있으면 아무나 가능한 일일까?

그 전 같으면 여론은 그런가보다 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몰랐고 관심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지난 4월 재보궐 선거를 뒤흔든 LH 직원들의 땅투기 사건을 통해 진상을 알게 됐다. 그 동안 진짜 투기꾼들은 개발 정보를 미리 알고 농민을 가장해서 농지를 샀고 이를 팔아 막대한 양도차익을 거두고 있었다. 가뜩이나 하루가 다르게 뛰는 전세값, 집값에 분노한 민심은 관리 책임을 정부 여당에 물었다. 게다가 일부 여권 인사들이 임차인의 권리를 확대한 임대차법 개정 전에 임대보증금을 올려 받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무능과 배신의 이미지를 뒤집어 쓴 민주당이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회의장 [사진=이병로 기자]

우리나라 헌법 121조 1항에는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윤 의원 부친은 경자(농사짓는 사람)가 아닌데 농지를 샀고 금지된 소작도 주었다. 헌법에 반하는 행동이다. 

경자유전의 헌법 정신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법률은 ‘농지법’이다. 상위법인 헌법에 합당하게 직접 농사를 짓는 농업인을 보호하고 안정정 식량 생산을 위한 농지를 확보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하지만 농지법 상의 규제는 느슨했다. 여기에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예외 조항을 잔뜩 집어넣어 마음만 먹으면 비농업인도 농지 매입을 가능하게 했다. 대표적인 게 제6조 농지 소유 제한을 허가하는 예외조항이다. 올해 국회를 통과해 8월에 공포된 개정 농지법에서도 여전히 주말·체험영농, 상속, 이농(농사를 그만두고 떠남)의 농지 소유는 가능하도록  했다. 

여기에 처벌도 약하다. 올해 법 개정으로 강화됐다는 농지법 위반 처벌 조항은 이렇다. 불법 취득으로 농지 처분명령을 받은 사람이 이를 이행하지 않을 때 매년 이행 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 산출 기준(토지가액)은 공시지가와 감정평가액 중 더 높은 가액으로 25% 수준이다. 농지법을 위반할 목적으로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은 자에 대해 부과되는 벌금은 과거 5천만 원 이하에서 해당 토지의 개별공시지가에 따른 토지가액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상향됐다. 불법 위탁경영, 임대차 등에 대한 벌칙도 현행 ‘1천만원 이하 벌금’에서 ‘2천만원 이하 벌금’으로 높였다. 겨우 이 정도다. 

농지법은 1996년 제정된 이래로 올해까지 모두 18차례 개정을 거쳤다. 거의 1~2년에 한번 꼴로 고쳤다는 얘기다. 그동안 눈치 빠른 사람들은 법의 허점을 이용해 농지를 사고 팔으며 차익을 챙겨왔다. 그동안 수차례 농지법을 개정했지만, 결국 농지 투기를 막지 못했다. 법을 만들거나 집행하는 사람들 모두 경자유전의 헌법 정신을 애써 모른 척 한 것은 아닌지, 그들과 친지들이 농지를 소유하려고 했던 뭔가 불온한 이유가 있던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상위법의 취지를 하위법에서 무력화시키는 입법 기술은 늘 봐오던 바가 아니던가?  

1948년5월 31일 열린 제헌국회 개원식 [사진=이승만 기념관]

우리 헌법의 경자유전의 원칙은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1948년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과 함께 만들어진 제헌 헌법에도 농지는 농사를 짓는 농민이 소유해야 한다는 농정 철학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이를 이어받아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추진하고 국회가 법률로 만든 게 바로 ‘농지개혁법’이다. 독재자의 오명을 쓰고 권좌에서 밀려난 대통령이지만, 그가 추진했던 농지개혁은 역사가들의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돈 많은 지주의 농지를 강제로 매입해 농민들에게 나눠 준다는 발상은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하다는 공격을 받으면서도, 이승만 정부는 해냈다. 당시는 물론 지금도 엄두를 못 낼 결단이었다. 

1945년 광복 당시 전국 농지 총면적은 222만6천ha로 이중 65%인 144만7천ha가 소작지였다. 당시 소작료는 생산량의 50%에서 많게는 80%에 달했다. 일제 때부터 있었던 지주와 소작인 간의 분쟁도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소련이 진주한 북한에서는 1946년 3월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의 농지 개혁이 단행됐다. 이 소식은 언론을 통해 남한에도 보도됐다. 남한 농민들 입장에서는 북한에 대한 동경과 남한 현실에 대한 불만이 고조될 수 있었다. 당시 남한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미군정은 소요 사태 등 민심 이반 가능성에 촉각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1948년 3월 미군정은 우선 일본인이 남기고 간 '귀속토지' 29만1천ha에 대해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농가당 2ha를 상한으로 농지를 유상으로 분배했다. 농지가격은 연간 생산량의 3배로 하고 지대 상환은 15년으로 나눠 매해 생산량의 20%씩 하도록 했다. 미군정에 의한 1차 농지개혁이다.

1948년 7월 20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승만은 2차 농지개혁을 추진했다. 이승만은 집권 과정에서 국내파 독립운동가와 친자본·지주세력이 주축이 된 한국민주당의 지지를 받았지만 집권 후 내각 구성에서 이들을 배제했다. 특히 공산주의 운동 경력을 가지고 있던 사민주의자 조봉암을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농지개혁을 밀어붙였다. 

1949년 1월에 국회에 제출된 최초의 ‘농지개혁법’은 중간에 개정을 거쳐 1950년 3월 공포되었다. 이 법은 농지의 농가당 소유 한도를 3ha(약 9천평)으로 제한했다. 이를 초과하는 토지는 국가가 유상으로 매입해 소작농들에게 유상으로 분배했다. 농지가격은 연간 생산액의 1.5배를 원칙으로 하고 작물와 개간 여부 등에 따라 차등 산정했다. 정부는 지주들에게 토지를 매입하고 지가증권을 발행해 5년간 나누어 상환했다. 분배농지의 지가는 해당 농지의 보상액과 동일했다. 5년간 균할방식 또는 일시불을 모두 허용했고 형편에 따라 상환 연장도 가능토록 했다. 법의 공포 후 3개월 만에 한국전쟁이 발발해 농지 매입과 분배는 잠시 멈추기도 했지만,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이후 곧바로 재추진됐다. 이 개혁 작업은 결국 1967년에 이르러서야 완성됐다.

국회 본회의장 [사진=국회 홈페이지]

현행 ‘농지법’은 1987년 민주화운동의 산물로 만들어진 6공화국 헌법에 기초하고 있다. 또한,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전쟁 와중에서도 진행된 1공화국의 농지개혁 정신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현실은 허점 많은 법률로 전락해 농지 투지를 막지 못하고 오히려 길을 터줬다. 문제가 생길 때마나 땜질식 처방으로 법의 본래 취지가 퇴색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현재 드러난 농지를 활용한 땅투기 문제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국가식량안보와 환경문제, 국토균형발전과 일자리문제와 연계해 농업·농촌을 살리는 법 개정이 절실하다. 

식량안보를 위한 전략과 이에 필요한 농지는 얼마나 되며 도시 부동산 문제로 줄어드는 농지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관료와 국회의원 중심의 입법 과정에 이해당사자인 농업인은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가? 토지 소유의 자유와 농지 소유 제한 간의 이념적 갈등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규제 수위를 높여 귀농귀촌 인구가 줄게 된다면 비어가는 농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시세 차익과 함께 농업직불금까지 챙겨가는 가짜 농민은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 농지 전수조사와 전산화는 얼마나 신속하고 빈틈없이 추진할 것인가? 

이 같은 물음에 공직자들은 해답을 내고 실행에 나서야 한다. 그게 책임있는 자세이며 마땅히 해야 할 도리다. 윤희숙 의원은 국내 명문대학과 해외 유학을 마치고 국책연구기관인 KDI에서 근무한 유능한 인재다. 초선임에도 불구하고 국회 연설을 통해 현 정부 부동산 정책에 일침을 가하며 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윤 의원은 선출직 공무원으로 나설 때의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국회의원에 도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국민과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 나선 공직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부조리를 개선하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옳다. 그 자리는 “억울하다”고, “정권 교체의 명분이 희화화 된다”고 마음대로 내려놓을 만큼 가볍지 않다. 그의 명석함과 용기, 열정이면 난마처럼 얽힌 농지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 사퇴는 그 모든 난제를 풀고 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2018년 기준 임차농지는 전체 농지의 45%, 임차농가는 전체 농가의 50% 수준이다. 이승만의 농지개혁 때로 되돌아갔다는 한탄도 나온다. 21세기판 농지개혁의 명분은 차고도 넘친다. 국가공익위원회의 국회의원 부동산 전수 결과 여야 모두 12명씩 법 위반 의심 사례가 나왔다. 이번에야 말로 국회의원들과 고위 관료들은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농지법 대수술에 나서야 한다. 국민적 의혹과 억울함을 풀고 스스로 청렴함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저작권자 © 한국영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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