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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정치학, 그 아슬아슬했던 역사

기사승인 2021.07.23  00: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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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말이 전도된 개최국 일본... 갈등의 한일 관계, 문화 교류로 풀어야

[한국영농신문 이병로 기자]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잘 먹어야 힘을 쓴다는 뜻이다. 사람이 살기 위한 에너지는 먹는 음식으로 얻는다. 동물은 식물이 아니기에 다른 생명을 먹어야 목숨을 보존할 수 있다. 육체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 옛 말로 일꾼들은 잘 먹여야 일도 잘한다는 일종의 믿음이 있다. 

노동은 아니지만 신체 능력을 최대치로 뽑아내야 하는 운동선수들은 어떨까? 역시 먹는 게 중요하다. 종목별로 필요한 운동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선수들에게는 경기력을 최대한 끌어 올릴 수 있는 과학적 식단이 중요하다. 

먹거리 측면에서 이번 도쿄 올림픽은 준비 상태가 빵점이다. 원전 사고로 위험천만한 후쿠시마 산 식재료를 선수들 식탁 위에 올리겠다는 발상을 보면 그렇다. 불안한 선수단이 선수촌 밖에서 음식을 따로 만들어 먹겠다고 해도 손사래를 치며 막는다. 손님 불러 놓고 상한 음식을 먹이겠다는 것도 모자라, 알아서 먹겠다는 손님의 입을 막는 격이다. 왜 그럴까?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떨어진 국격을 되살리기 위해, 일본 정부는 올림픽을 외교와 정치에 활용하고자 했다. 후쿠시마 산 농산물을 각국의 선수들에게 제공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세계인이 먹는 안전한 음식라고 홍보하며 원전 사고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보여주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린피스가 2018년 10월 촬영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모습. 방사성 오염수를 담고 있는 푸른색 저장탱크들이 발전소 부지 안쪽에 늘어서 있다. [사진=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

이에 더해 선수들을 불안하게 하는 건 다름아닌 코로나 19 재유행이다. 개막을 하루 앞둔 7월 22일 기준, 일본 전역에 코로나 19 확진자는 하루에 5천 명, 도쿄에만 2천 명에 이른다. 올림픽 선수촌에서도 벌써 5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대회 관계자로 범위를 확장하면 확진자 수는 75명이나 된다. 일본 언론과 시민사회는 진작부터 올림픽 개최는 무리라며 연기 또는 포기를 주장해 왔다. 야당에서도 연일 정부의 준비 부족과 방역의 허술함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마이니치신문>과 사회조사연구센터가 진행한 여론조사를 보면, 도쿄올림픽을 ‘안전’하게 개최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4%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한 이번달 18일 <마이니치신문>의 여론조사 결과, 도쿄올림픽에 대해 '즐길 기분이 아니다'라고 답한 응답자가 48%에 달했다. 일본 국민들조차 달갑지 않은 올림픽이다. 

급기야 토요타나 파나소닉 같은 주요 스폰서 기업들은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파국의 책임자인 아베 신조 전 총리도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과 정치인 모두 민심을 이반한 올림픽과 섞이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다. 이미지를 깎아먹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일종의 발 빼기 전략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일본 측이 욱일기를 경기장에 가져와 응원에 사용하겠다는 것. 욱일기는 일본 제국주의 해군의 군기다. 태양을 의미하는 붉은 원에서 뻗어나가는 예리하고 굵은 광선이 사방으로 퍼지는 일본 제국의 확장을 의미한다. 그래서 중국과 한국 등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았던 국가들은 욱일기를 전범기로 여기고 사용을 금한다. 유럽인들이 하켄크로이츠(나치의 문양인 구부러진 십자가)를 보고 유대인 학살과 전범 국가 독일을 떠올리는 것과 같다. 

일본 우익들은 그런 전범기를 당당하게 세계 만인들이 지켜보고 있는 평화의 제전, 올림픽 경기에서 흔들겠다는 것이다. 이런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욱일기에 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편견을 교정하고 전범 국가로써의 이미지를 벗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이쯤되면 도쿄 올림픽은 천덕꾸러기 신세에, 막장 드라마가 되어 가고 있다.

올림픽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도구나 표현의 사용을 엄격히 금지해 오고 있다. 지난번 평창 올림픽에서 한반도 기에 그려진 독도를 일본측이 문제 삼자 IOC는 삭제를 강력 권고했다. 그러던 IOC가 이번 욱일기 문제나 후쿠시마산 농산물 사용에는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IOC가 일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이유가 따로 있는 듯하다. 이렇게 준비가 안되고 정치적 색채가 농후한 올림픽이 또 있었을까? 

일본의 극우단체 한 회원이 도쿄올림픽 선수촌 한국 선수단 거주층에 내건 '이순신 현수막'에 맞서 욱일기로 시위하는 모습 [사진=서경덕 교수 제공]

근대 올림픽은 1896년 그리스에서 제1회 대회가 열리며 시작됐다. 이번 32회 도쿄 올림픽까지 지난 125년 동안 인류는 큰 전쟁을 두 번이나 겪었고 크고 작은 분쟁과 테러 등으로 서로 싸우기에 바빴다. 올림픽 운영 방법과 규칙을 정해놓은 것이 올림픽 헌장 1장 6조을 보면 “올림픽에서의 경쟁은 개인이나 팀의 경쟁이지 국가간의 경쟁이 아니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각국 정부나 정치 집단들이 선전의 장으로 악용하기도 한다. 국기를 가슴에 달고 나라를 대표해서 뛰는 선수들과 그들을 응원하느라 흥분된 자국 국민들을 겨냥하기 좋은 기회다. 또한, 전세계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집중해서 경기를 본다. 주목도가 높아 정치적 메세지를 던지기에 좋은 환경이다. 심하면 폭력을 수반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정치 선전장의 대표 사례는 1932년에 열린 베를린 올림픽이다. 나치 독일 체제하에서 열린 이 대회는 최초의 텔레비전 생중계가 시도됐다. 그 유명한 나치의 선전용 다큐멘터리 영화 ‘올림피아’도 만들어졌다. 1차 세계대전 패전국 독일을 재건하려는 나치의 정치적 목적에 미디어가 충실히 활용됐다. 올림픽 깃발과 함께 나치당의 깃발이 나부끼고 개회식에서 독일 대표팀의 뒤에는 군장교들이 정복을 입고 행진했다. 한손을 앞으로 치켜드는 로마식 인사도 경기장에서 볼 수 있었다. 

나치는 독일을 위대한 아리아인의 나라로 홍보함으로써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으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또한 올림픽 기간 중 유대인에 대한 차별정책을 잠시 철회하는 조치도 취했다. 이를 통해 독일은 평화와 관용의 나라임을 세계 만방에 선전하고자 했다. 하지만 독일은 3년 뒤 폴란드를 침공하며 2차 세계대전에 불을 붙인다. 히틀러가 올림픽을 평화를 가장한 기만전술로 활용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대목이다. 

테러로 사망자가 나온 올림픽도 있다. 뮌헨 올림픽이 한창이던 1972년 9월 5일 팔레스타인 테러단체 ‘검은 9월단‘ 소속 무장괴한들은 이스라엘 선수촌에 잠입해 인질극을 벌였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수감된 팔레스타인 양심수 234명 석방을 요구했다. 협상이 결렬되고 서독 경찰의 진압작전은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인질로 잡힌 이스라엘 선수 11명 전원과 무장괴한 4명, 서독 경찰 1명이 사망했다. 올림픽이 피로 물든 대참사였다. 

선수단 사망직후 이스라엘에서는 대회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이스라엘 선수단은 동료 선수의 주검을 수습해 귀국길에 올랐다. IOC와 서독측은 대회 중단을 협의했지만 수년간 고생하며 준비한 다른 선수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재개 결정을 했다. 최초로 올림픽 깃발이 조기로 게양된 가운데 비정한 올림픽은 끝까지 치러졌다. 

1936 베를린 올림픽 당시 경기장에서는 나치당의 깃발인 하켄크로이츠가 걸렸다. [사진=브리태니카 제공 영상캡쳐]

최근 들어 올림픽은 지나친 상업성으로 비난 받고 있다. 원래 IOC는 스폰서의 자금 후원을 거부해 왔으나 1980년 사마란치 위원장 취임 후 올림픽 중계와 상표의 스폰서를 적극 유치하기 시작했다. 기업들로부터 후원받은 돈이 넘쳐나면서 IOC는 거대한 이익집단이 됐다. 이번 도쿄 올림픽은 원래 작년에 개막했어야 했지만 팬데믹 상황임을 감안해 한 해 연기됐다. 올해도 여전한 코로나 19 대유행 속에도 대회를 강행하는 이유는 결국 막대한 중계권료의 배상 때문이라는 후문이 돈다. 

IOC는 미디어에게 중계권을 팔고, 미디어는 기업들에게 광고를 팔아 놨으니 경기가 무산되면 역순으로 돈을 물어줘야 한다. 수익의 최종 종착지인 IOC와 일본 정부는 배상에도 최종 책임이 있다. 이들에게 대회 무산은 상상할 수 없는 낭패다. 코로나 19 재유행과 일본 국민의 반대 속에서도 올림픽이라는 기차가 멈추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도쿄로 간 우리 선수들은 이런 어수선한 여건 속에서 앞으로 있을 경기에 집중하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이들에게 안전한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숙소 근처 호텔을 통째로 빌렸다. 한국에서 급파된 조리사들은 국산 재료로 도시락을 만들어 점심, 저녁으로 선수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밥이라도 편하게 먹으며 뛰라는 세심한 배려다. 

한국농수산식품공사도 한 몫하고 있다. 국산 김치를 공수해 선수단에 공급하기로 한 것. K-푸드의 대표선수 김치도 우리 선수들과 함께 뛰고 있는 셈이다. 김치의 해외 시장에서의 선전은 눈부시다. 2020년 김치 수출 실적은 전년 대비 37.6%가 증가한 1억 4451만 달러에 이른다. 일본 판매도 훌쩍 뛰어 올랐다. 2019년보다 28.8% 성장한 7109만 달러의 김치를 일본에 수출했다. 양국의 외교관계는 얼어붙었지만 음식의 교류는 끊이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한일이 지금처럼 원수같이 지낼 수는 없다. 대판 싸운 사이는 같이 먹고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나서야 앙금이 풀어지고 대화가 가능하다. 양국 젊은이들이 케이 팝에 맞춰 춤을 추고 양국의 음식을 나누며 교류할 날은 올까? 양국간 꼬일대로 꼬인 실타래, 음악ㆍ드라마ㆍ음식같은 '문화'를 매개로 풀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아울러 악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우리 선수들에게도 응원을 보낸다. 후회없이 싸우라, 밥심으로 힘을 내라, 코리아팀 화이팅! 

한일이 지금처럼 원수같이 지낼 수는 없다. 대판 싸운 사이는 같이 먹고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나서야 앙금이 풀어지고 대화가 가능하다. [사진=농촌진흥청]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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