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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반독점 개전... 국내 농산물 유통은 공정한가?

기사승인 2021.07.15  23: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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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든, “경쟁 없는 자본주의는 착취”... '미국경제 경쟁촉진 행정명령'에 서명

[한국영농신문 이병로 기자] 

“파는 사람이 많으면 가격은 내려갑니다.“ 2000년대 중반 인터넷쇼핑몰의 선두주자였던 옥션의 광고 카피다. 근육질의 남자가 땅을 파는데 마침내 주변의 남자들도 모두 땅을 파기 시작한다. 마치 개미굴을 만드는 개미들처럼 열심히 땅을 판다. 이 때 이 카피가 화면에 나온다. 어리둥절하던 시청자들은 박장대소한다. 땅을 파는(digging) 행동으로 물건을 파는(selling) 행동을 연상하도록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것. ”옥션이라는 쇼핑몰은 물건을 파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가격도 싸다, 그러니 옥션으로 와서 물건을 사라“는 메시지다. 

당연한 이치다. 물건의 수량이 정해져 있다면 파는 사람이 많을수록 물건 값은 내려간다. 반대로 물건 수가 정해져 있는데 파는 사람이 적다면 물건 값은 올라간다. 극단적으로 파는 사람이 한 명이라면? 물건 값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당연히 그 물건을 파는 사람은 큰돈을 벌게 된다. 그 물건이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 예컨대 석유, 철도(이동수단), 강철, 전화서비스, 컴퓨터운영프로그램, 검색서비스라면? 전지구 최강 부자가 탄생한다. 이것이 바로 독점(Monopoly)의 원리다. 회사 가치를 높이 평가 받지만 심하면 당국의 규제가 뒤따른다.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는 독점을 싫어한다. 미국이 대표적인 나라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경제의 경쟁 촉진에 대한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폴리티코 방송화면 캡쳐]

지난 7월 9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경제의 경쟁 촉진에 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 경제 전반에 걸쳐 대기업의 횡포를 막고 소비자와 중소기업 보호를 강화해 불공정한 경쟁을 막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총 72개 조치로 구성되어 있는 이 명령은 직접적인 규제는 아니다. 다만, 행정부처의 업무추진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 이 명령을 받게 되는 10여 개의 정부 부처들은 기술, 의료·보건, 농업 등 3개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반독점 관행 개선에 나설 예정이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규제가 눈에 띈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온라인서비스 업체들은 고객의 개인 정보와 서비스 이용 중 취득하게 된 사생활 보호에 적극 나서도록 했다. 또한 독점기업이 소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경우, 미국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불공정한 조건의 거래가 아닌지를 조사해 제동을 걸 수 있도록 했다. 예컨대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이나 왓츠앱 등을 사업 초기에 인수했는데 이러한 거래는 잠재적 경쟁자를 사전에 제거하는 ‘킬러 인수’에 해당한다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앞으로 이런 행위는 소비자가 좋은 서비스를 선택할 권리를 침해했다는 사유로 독점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제조사의 독점적 AS 정책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FTC는 애플과 같이 수리 서비스를 자사가 독점하는 구조를 개선하고 소비자가 자유롭게 수리업체를 선정할 수 있도록 법규 개선에 나선다. 애플은 자사 또는 공인받은 수리점이 아닌 일반 업체에서 한 번이라도 수리를 받았을 경우, 품질보증을 해주지 않는 폐쇄적 AS 정책으로 악명이 높다.

사진은 뉴욕 5번가에 위치한 애플스토어 내부 [사진=애플 홈페이지]

의료·보건 부문에서는 미국 제약사들의 비싼 약값 횡포에 타격을 가할 태세다. 캐나다 산 저렴한 의약품 수입 확대와 복제약의 신속한 허가 등이 추진된다. 아울러 항공·운송 부문에서도 불명확한 위탁화물 요금과 과도한 예약 취소 수수료의 기준을 개편해 소비자 권리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농업부문에서는 축산농민과 포장·가공업체 사이의 불평등한 거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식육가공업자와 가축거래소에 관한 법’(Packers and stockyard act)을 개정하기로 했다. 이법은 포장·가공업자의 ‘기만적 행위’와 ‘차별적 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관련 규정이 모호해 실효성이 적다는 지적이 있었다. 미국 농업부(USDA)는 관련 규정을 보다 명확히 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포장·가공업체들이 농민들보다 우월한 지위를 활용해 자의적을 품질 등급을 분류하거나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불공정 거래 관행에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이번 행정명령의 하이라이트는 노동 분야다. 동종 업계 이직을 금지하는 규정 때문에 미국인의 1/5이 노동시장에서 경쟁하지 못하게 묶여있는 상태다. FTC는 앞으로 이 규정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에 나설 예정이다. 백악관 발표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경쟁 저하에 따른 노동자의 임금 손실이 중위소득 가정 기준으로 연 5천 달러(약 57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점과 불공정 거래가 시민들의 소득을 좀 먹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정치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지난 7월 9일 “바이든, 독점들에 대한 기습 감행”(Biden launches assault on monopolies)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행했다.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행정명령 서명식 연설에서 “나는 자랑스러운 자본가”라며 “경쟁 없는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착취다.”라고 말했다. 폴리티코는 이날 바이든은 ‘노동자 계층의 챔피언’으로 홍보하기 위해 이번 명령을 활용했다면서 이는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철도 트러스트 해체와 대공황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노력에 비견될 만하다고 전했다.

미국 반독점법의 원조인 '셔먼법'을 제정한 존 셔먼(John Sherman) [사진=위키피디아]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의 반독점 철학은 강고하다. 핵심은 공정한 경쟁이다. 20세기 들어 미국 정부는 이 질서를 깨는 독점 기업이 나오면 어김없이 철퇴를 가했다. 시장을 지배하는 독점기업은 높은 가격을 유지할 것이고 고객은 필요 이상의 돈을 지불하게 된다. 서비스와 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지 않아도 되니 기업의 혁신도 사라진다. 새로운 기업의 탄생은 줄고, 경제는 역동성을 잃게 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즉 시민이 보게 된다는 논리다.

대표적인 규제법은 1890년 제정된 '셔먼법(Sherman Act)'이다. 반독점의 마그나카르타(대헌장)로 불리는 이 법은 동종업체의 기업연합(카르텔)이나 기업합동(트러스트)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록펠러 소유의 석유회사 스탠더드오일은 1870년까지 전국의 석유회사를 인수-합병해 시장 점유율이 90%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록펠러는 온갖 탈법을 동원해 경쟁회사를 협박, 회유하고 파산에 이르게 했다. 독점기업이 된 스탠더드 오일은 미국의 석유 사업을 완전히 손에 넣고 마음대로 조종하게 됐다. 이 사건은 각 주와 중앙정부가 반독점 규제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됐다. 결국 공화당 의원이었던 존 셔먼이 앞장서서 이 법을 제정했다. 

반독점법의 본격적인 시행은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때부터다. 셔먼법이 그전에 나왔지만, 독점기업의 금권과 위세에 밀려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셔먼법을 당초 취지에 맞게 활용했다. 법무부는 1907년 스탠더드 오일을 셔먼법 위반으로 제소했고 1911년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법무부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스탠더드 오일은 34개의 기업으로 분할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받아 쪼개지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비슷한 시기 금융왕 제이피 모간이 소유했던 철도회사 ‘노던 시큐리티스’, 95% 시장점유율을 자랑했던 담배회사 ‘아메리칸 타바코’도 해체의 수순을 밟았다.

이후 미국은 관련 법령을 정비해 현재와 같이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반독점 규제를 담당하는 체계를 갖게 됐다. 통신기업 AT&T의 해체, 마이크로소프트의 벌금과 창업주 빌 게이츠의 퇴진도 모두 미국의 반독점 규제 당국이 주도한 사건들이다. 이렇듯 현대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는 반독점과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주민 의원을 포함한 소비자단체, 생산자단체, 서울시농식품공사 관계자 등은 2020년 10월 21일 국회앞에서 '독점적 가락동 도매시장, 공정경쟁 도입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박주민 의원실]

한편, 국내 농업계에서는 농산물의 독점적 경매권을 둘러싼 논쟁이 십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발단은 1976년 제정된 농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일명 ‘농안법’이다. 이법은 수차례 개정을 거쳐 현재 서울 가락농수산물시장의 6개 도매시장법인들이 전국에서 취합된 농산물을 경매 방식으로 중간 유통상에게 판매할 권한을 보장하고 있다. 

일부 농민들과 단체들이 독점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서울시는 2013년부터 농민과 중간도매상인들이 직접 가격을 흥정해 거래하는 ‘시장도매인제도‘ 도입을 추진했다. 하지만 농식품부는 2015년 서울시의 제도 도입 요청에 대해 유통인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승인을 거부했다. 이에 전국양파생산자협회는 지난해 12월 감사원에 공익 감사를 청구했다. 이들은 “농식품부가 경쟁제한적 시장제도를 유지하고 시장개설자의 자치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지난 6월 감사원은 농식품부를 상대로 서울 가락농수산물시장 경매제도 운용과 관련해 감사에 들어갔다. 가락시장이 설립된지 36년이 지났다. 그간 소수의 도매시장법인들이 경매를 통해 독점해온 농산물 유통 방식에 변화가 올지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농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감사원 이미지 [사진=감사원 홈페이지]

경매제나 시장도매인제나 일장일단이 있다. 어떤 제도도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정한 경쟁이 있느냐다.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주장하는 측도 고객인 농민이 자기 처지에 맞게 선택하게 자유를 주라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유통업자는 더 싸게 파는 농민들 찾아서, 농민들은 더 비싸게 사줄 유통업자를 찾아서 자유롭게 거래하는 게 ‘자유시장경제’ 아닌가?

일반 산업분야를 보자. 특정 독점세력이 불공정거래를 시도한다면 당국이 나서서 규제한다. 왜 농산물 유통에는 이처럼 자연스러운 자본주의의 순기능이 작동되지 않는가? 만약 농민이 독점세력이 되어 농산물 가격을 통제한다면 이 역시 규제의 철퇴를 맞아야 옳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선 어불성설이다. 파편화된 농민들은 거대 유통자본에 맞설 힘이 없다. 억울하면 도심시위를 하거나 땅을 갈아엎을 뿐. 행사할 실력이라는 게 별로 없다.

독점은 안 된다. 절대 권력은 부패한다. 미국 반독점법의 시조인 존 셔먼 의원은 “정치에서 전제 군주를 원치 않듯, 경제에서도 독점 기업은 원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바이든의 말마따나 경쟁 없는 자본주의는 착취일 뿐이다. 십 여 년째 농가가 순수히 농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인 ‘농업소득’이 연간 1천만 원 수준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파는 사람이 많으면 가격이 내려가는 것처럼 사는 사람이 많아야 가격이 올라가는 법이다. 감사원의 감사는 이 자연스러운 법칙에 역행하는 세력이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누가 농민을 착취하고 있는가? 누가 농업계의 전제 군주인가? 이제 감사원이 답을 낼 차례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저작권자 © 한국영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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