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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의 나라, 인도... 농민 시위 불붙었다

기사승인 2021.01.14  17: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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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시장적 농산물 유통정책에 분노... 농정당국, 도매시장 점검에 ‘반면교사’ 삼아야

인도는 ‘카스트‘ 제도의 나라다. 카스트의 어원은 포르투갈어 카스타(Casta)에서 왔다. 대항해 시절 인도에 도착한 포르투갈 사람들은 이 관습을 ‘순결한‘이라는 뜻의 카스타로 칭했다. 이후 영국 식민지 시대에 이르러 카스트(Caste)라는 명칭으로 굳어졌다. 최상위 브라만(성직자, 학자), 크샤트리아(무사, 관료), 바이샤(자작농, 상공업자), 수드라(소작농, 노동자)까지 크게 4개로 나눠져 있다. 배경은 전생의 업보(카르마)에 의해 현생의 카스트가 정해지며 선행(다르마)을 쌓아 내생을 기원하는 힌두교의 운명론적 교리에 근간을 두고 있다.

인도 사람들은 카스트를 와르나(Varna)라고 부른다. ’색‘(color)라는 뜻이다. 피부색을 지칭한다. 계급이 피부색에 따라 나눠졌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카스트는 기원전 1300년 페르시아 지역의 아리아인의 인도 대륙 침입에서 유래했다는 학설도 있다. 이들은 토착민인 드라비다인이나 문다인과 피부색이 달랐다. 아리아인은 현재 이란인들과 같이 키가 크고 피부색이 흰 유럽계통 민족이다. 이에 반해 드라비다인과 문다인의 피부색은 검거나 갈색이다. 아리아인들이 지배계층이 되고 토착민은 피지배로 떨어졌다. 자연스럽게 피부색이 신분을 나타내게 됐다.

현대 인도는 민주주의 국가다. 헌법에도 자유와 평등을 명기해 놓았고 법률로 운영되는 나라다. 게다가 카스트 제도는 법이나 규정으로 명기해 놓은 바가 없다. 그저 사람들의 사고 속에 존재하는 관습법이다. 인도는 인구가 많고 국토가 넓은 다민족 국가다. 그렇다 보니 지방자치의 전통이 강하고 실제로 중앙정부의 행정력이 온 나라 구석구석에 미치지 못한다. 대도시에서는 카스트 제도가 유명무실하지만, 중소도시나 시골에서는 아직도 지역사회를 유지하는 체계로 작동된다. 종종 상위 계급이 하위 계급을 살해하거나 형벌을 가하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다.

인도 농민들은 지난 11월 말부터 수도 뉴델리로 들어가는 주요 도로를 점거하고 캠프를 만들어 농성 중이다. 인도 농민 시위 현장의 구호 "농민없이 식량없다" [사진=CNN 방송 캡쳐]

이런 불평등이 존재하는 배경을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카스트가 전부는 아니다. 바로 부와 직업에 따른 차별이 원인이다. 인도에는 세습 직업으로 분류되는 가문이 존재하는데 이를 자티(Jati)라고 부른다. 자티는 3천여 개나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말한 4개 카스트는 수많은 자티를 비슷한 계급으로 묶은 일종의 집단 명사인 셈이다. 결국 피부색에서 시작한 카스트는 직업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는 잘못된 종교적 믿음이 카스트의 병폐다. 가난한 인도 농민들에게도 사회적 편견과 차별은 현실이다.

인도 농민들은 지난 11월 말부터 수도 뉴델리로 들어가는 주요 도로를 점거하고 캠프를 만들어 농성 중이다. 인도 의회가 농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작년 9월 농업개혁법이라고 불리는 ‘농산물 무역 및 상업법’, ‘가격보장 및 서비스 협의법’, 필수식품법‘ 등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지적하는 문제의 핵심은 농산물 유통의 주체가 정부에서 민간으로 이전된다는 점이다.

인도는 그간 정부가 최저 가격을 고시해 정부가 지정하는 도매시장을 통해 농산물을 유통하도록 해왔다. 이 제도는 농산물 가격의 하락을 저지해 농민들에게 최소한의 수입을 보장해주는 장점은 있었다. 반면, 입찰 업체들의 담합 등으로 농민들은 문자 그대로 최저 수준의 판매금액을 손에 쥐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농민들은 가난하다. 이 때문에 최근 생활고로 자살하는 인도 농민의 수가 연간 1만 명에 이른다. 게다가 정부 재정의 과도한 투입과 함께 농민 수의 과다가 문제로 지적돼 왔다. 2014년부터 집권 중인 친시장 성향의 모디(Modi) 정부는 이를 개혁과제로 봤다. 보조금 때문에 농민들은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 농업을 떠나서 다른 직업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농산물 유통을 시장에 기능에 맡기고 농민과 민간업자 간의 직거래를 가능케 해 정부의 책임과 재정을 줄이고자 했다.

모디의 이번 조치가 성공을 할지 의문이다. 13억 인도 인구 중 58% 가 농민이다. 이들에게 마땅히 줄만한 일자리도 충분치 않다. 갑작스러운 제도 변경으로 그나마 최저로 살던 농민들의 삶이 더욱 팍팍해 질 것이라는 걱정이 크다. 다수 농민의 표를 잃을 수도 있는데도 모디 정권은 밀어붙인다. 진정 강심장이다. 농민이 원래 사회적 약자라서 무시하는 걸까? 아니면 카스트의 최하층 ‘수드라‘이기 때문일까?

정부와 농민시위대간 협상이 어려움을 겪자 지난 12일 인도 대법원은 11월 말부터 대규모 농민시위를 촉발한 ‘농업개혁법‘ 3건의 집행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이 문제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 위원회를 구성해 정부와 농민 사이를 중재해 풀어나갈 예정이다. 4 인으로 구성된 중재위원회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10 일 이내에 회의를 거쳐 2 개월 이내에 첫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위원회의 구성원이 친정부 성향이라면 농민들의 의견에 반하는 결론이 날 수도 있다. 벌써부터 4명의 위원 중 3명이 새로운 법안에 찬성 의견이고 나머지 1명도 유보적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인도 농업 쌀 논 이미지 [사진=픽사베이]

인도 농민 시위를 보자니 기시감이 든다. 유통이 문제이긴 우리 농업도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 농민은 최저 가격도 보장받지 못한 상태에서 경매 방식을 강요받았다. 가격 변동폭이 매우 큰, 위험한 거래에 노출돼 왔던 것. 국내 최대 도매시장의 개설자인 서울시는 경매제와 함께 중간 도매상과 농민간의 직거래를 가능하도록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하려고 한다. 하지만 농업계 안팎의 반대에 고전 중이다. 어느 제도든 완벽한 것은 없다. 다만, 공정거래에 불리한 일방의 선택권을 늘려주는 것은 공정 사회가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다. 농산물 생산의 주체가 가격 형성에 개입하지 못하고 경매에 의해 결정된 금액만 손에 쥐어야 하는 관행은 불공평하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산물 도매시장의 실효성 있는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대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전국 공영도매시장의 거래실태에 대한 일제점검을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된 유통제도 개혁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농민을 특별히 우대할 필요도 없다. 농정당국은 사고 파는 주체가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거래를 할 수 있게 해주면 된다. 이번에도 못한다면 사-농-공-상의 전근대적 직업관이 21세기 대명천지에 횡행하고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비웃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이 때문에 고통당하는 인도의 수많은 농민들의 현실과 뭐가 다를까.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저작권자 © 한국영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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