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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통 혁신’ 바람이 분다... 성패는 ‘힘‘ 쓰는 법에 달려

기사승인 2020.07.03  01: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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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통발상] 농산물 유통 문제 해법을 위한 발칙한 생각

변화를 일으키는 데는 힘이 필요하다. 잠시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 보자. 과학 시간에 힘의 3요소는 ‘작용점, 크기, 방향’이라고 배웠다. 쉽게 말해, 어디에 힘을 주는가, 얼마나 세게 힘을 주는가, 어떤 방향으로 힘을 주는가에 따라 물체의 움직임이 달라진다. 자연계의 법칙이 인문·사회·경제·정치의 영역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예가 많다. 

농업계의 숙원인 '유통 개혁'도 수십 년 전부터 몸부림쳐 왔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요원하다. 잘 안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작용점이 잘못됐거나 너무 힘이 약하거나, 방향을 잘 잡지 못해서 그렇다. 최근 농업계에 새로운 변화가 감지된다. 유관 기관들이 잇달아 기존 유통 거래 관행에서 벗어나 혁신을 하겠다며 온라인 거래에 집중하고 있다. 농산물 유통에 부는 디지털 혁신 바람, 반가운 일이다. 

지난 7월 1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농식품거래소'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aT에 따르면 비대면 방식의 ICT를 기반으로 농식품 유통 효율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농식품거래소를 만들었다. 기존의 ’사이버거래소‘를 확대 개편한 것으로 윤영배 사이버거래소장을 초대 본부장으로 선임했다. aT는 지난해부터 산지와 소비지 간 신개념 B2B 유통모델인 온라인경매를 운영해 왔다. 올해 하반기는 실시간 영상 기반 모바일 경매플랫폼도 선보일 예정이다. aT 이병호 사장은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상에서의 농산물 유통전반이 크게 위축된 만큼 전에 없던 과감하고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전경 [사진=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가락시장의 ‘스마트 마켓’ 추진 움직임도 눈길을 끈다. SK C&C는 지난 6월 30일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가락시장 스마트 마켓 구축 종합 계획 연구 용역 사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농수산물 산지 수확부터 배송, 하역, 거래, 품질 검사 및 도소매 판매 등 유통 전 과정에 인공지능(AI)·빅데이터·블록체인·클라우드 등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시장’을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체적인 청사진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먼저, 온라인 화상 거래 등 다양한 거래에 대응할 수 있는 ‘거래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한다. 이를 통해 물류를 효율화하고 유통 비용은 줄인다는 구상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식품 이력제도 선보인다. 이와 함께 온·습도 센서 조절 장치 등 콜드 체인을 적용한 ‘농수산물 신선도 관리 시스템’으로 안전하고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겠다는 청사진도 제시됐다. 

가장 주목할 만한 대목은 빅데이터 기반의 ‘유통정보시스템’이다.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게 농수산물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정형·비정형 유통 데이터를 활용한 ‘농수산물 유통정보시스템’이 그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량으로 거래되는 농수산물 도매유통에서 물량, 가격 등 유통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물량이 일시에 집중되는 현상을 완화해 준다. 가격 안정화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김경호 사장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기존의 가락시장 서비스를 혁신하고 미래 유통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도매시장을 그리는 것이 이번 사업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이대로라면 가락시장은 상전벽해와 같은 대변신을 맞게 될 것이다. 

농산물 유통혁신에는 농협도 빠질 수 없다. 농협은 지난 5월 27일 '온라인 농산물 거래시스템', 일명 온라인농산물거래소를 오픈하고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온라인농산물거래소는 온라인상의 농산물 도매시장과 같은 개념이다. 전국의 주요 생산자조직이 시스템에 사진 등 상품 정보을 직접 등록하고, 다양한 구매자들이 시간적·장소적 제약없이 참여해 B2B 거래를 한다. 거래가 체결되면 상품을 직배송 해준다. 거래의 편의성은 제고되고 중간 유통 비용은 절감된다. 상·하차 등으로 인한 감모·손실이 줄어 상품의 신선도는 높아지고, 유통량 조절 등을 통해 물량이 일시에 집중되는 현상을 완화함으로써 가격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농협은 농식품부와 손을 잡고 이번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서 온라인 거래에 대한 신뢰도 형성을 위해 객관적인 품질 기준 마련과 분쟁 조정·처리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대량의 상품을 보지 않고 구매하기 때문에 표준 규격을 설정·운영하고 고화질의 사진 등을 제공하게 했다. 이에 더해 출하처가 품질 기준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김현수 장관은 ”온라인농산물거래소를 통해 유통경로 간 건전한 경쟁체계를 구축하고, 거래비용 절감 및 신선도 제고 등 상물이 분리된 온라인 거래의 장점을 강화하여 농산물 유통의 효율화 및 가격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농협의 온라인농산물거래소 첫 화면

 앞서 살펴본 것이 모두 성공해서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이 한층 선진화되길 응원한다. 하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변화를 이끌 힘이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디지털 우선 유통 구조의 변화가 ‘거래 관행과 이해 당사자‘라는 커다란 바위를 미는 행위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 바위는 아래로 작용하는 중력보다 앞으로 미는 힘이 클 때 비로소 움직인다. 손을 대는 지점, 힘의 세기, 정확한 방향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힘의 3요소가 제대로 구성될 때 움직인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애초부터 힘을 모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것을 해낼 구심점도 함께. 그렇지 않고 각 기관별로 각자 변화를 추구한다면 힘은 분산되고 큰 힘을 낼 수 없다. 변화에 저항하는 세력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면 이 때문이다. ’각자 저러다 말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농협과 농식품부는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주체들이다. 근본적인 해결은 이들 주체들이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제대로 된 통합 전략을 짤 때 가능하다. 코로나 19가 가져온 비대면(언택트) 환경은 기존에 불합리한 거래관행을 제대로 바꿀 좋은 기회다. 각 기관의 대표자들이 ‘유통 혁신’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자리에 모이는 것부터 시작하기 바란다. 이번에 수장을 바꾸고 새롭게 출범하는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회가 중심이 되는 것도 좋겠다. 

변화의 원천은 힘이다. 힘을 제대로 쓰는 법은 중학교 과학책에 잘 쓰여 있다. 모르면 배워야 하고 알고도 안하면 직무유기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저작권자 © 한국영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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