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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국-일본-미국의 돼지고기 '국제 정치학'

기사승인 2019.09.29  2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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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돼지열병로 본 세계 각국의 식량 안보와 식량 자급 현황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초대형 태풍급이다. 국내 뿐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북한 등 세계 각국이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충격파를 온몸으로 체감중이다. 작게는 식탁 메뉴 변화에서부터 크게는 국제정치 역학구도 변화에 이르기까지 심하게 말해 ‘돼지의 반격’이 시작된 형국이다. 한 축산전문가는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이 한반도에서 돼지가 사라지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은 돼지고기 부족으로 민심이 이반될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마련중이며 당분간 미국산 대두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결정을 내렸다. 그 대두콩을 중국 돼지 5억마리가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중 무역전쟁에서 어느 정도 승기를 잡았기에 세계 3위 돼지고기 생산국인 미국의 돼지를 중국에 수출하는 방안도 조심스레 고려중이라는 추측성 보도도 나온다. 

돼지열병이 휩쓸고 간 북한 평안도에서는 돼지가 거의 없다는 국가정보원의 자료도 공개됐다. 일본에서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아닌 돼지콜레라가 발생해 백신생산량을 급격하게 늘리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쉽게 말해 돼지고기를 둘러싼 한국,중국,미국,일본,북한의 ‘파도타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에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몰고 온 국내외의 변화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름 하여 돼지고기의 국제 정치학. 또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의 국제 정치학이다. 

 

◇ 돼지고기 자급률 70% 대한민국, 돼지열병과 소비심리 위축 연관성에 촉각

지난 9월 17일 확진 판정 이후 2019년 9월 25일 현재 국내에서는 6번째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진 사례가 생겼다. 휴전선 인근 지역 중심으로 점차 확진 사례가 늘고 있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발생 1주일이 지나는 동안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지만, 양돈농가들의 걱정과 한숨 외에 다른 일들은 아직까지 수면 아래 잠복중이다. 눈에 띄는 큰 변화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 돼지고기 대표요리랄 수 있는 제육볶음을 둘러싼 뉴스들이 하나 둘씩 나오고 있다. 식당주인들 입장에서 제육볶음이 잘 안 팔리는 것 같다는 하소연이 방송전파를 타는가 하면, 정육점 주인들은 돼지고깃값이 폭등해서 제육볶음과 돈가스의 판매량이 줄어들까 걱정이라며 한숨을 쉰다.

한편 경제전문가들은 9월 25일 현재 한국은행의 ‘9월 소비자 동향조사’ 소비자심리지수(CCSI) 결과가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영향으로 지난 4월 이후 계속 내리막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한마디로 좋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정치·사회 이슈로 혼란이 길어졌을 때 소비자 체감 경기가 악화됐던 게 보통 과거의 사례였기 때문이다. 정부도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인한 소비자심리 악화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돼지고기 도매가는 급등했지만 아직 소매가는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상황이라며, 돼지고기 가격 불안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응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한국을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영향을 받은 국가 명단에 올렸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보도했다. 미국 동식물검역청은 현지시간 9월 23일 연방 관보에 북한을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영향을 받은 나라에 포함했다고 밝히고, 아직 관보에 게재되지는 않았지만 한국도 영향을 받은 나라에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한 지역의 돼지고기와 돼지고기 제품은 수입이 금지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돼지고기 자급률은 약 70% 정도인 것으로 추산된다. 나머지 30%를 수입한다는 뜻이다. 돼지고기 수출입통계를 주관하는 한국육류유통수출입협회라는 사단법인이 있다. 이곳은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유통시세를 조사하여 발표하고, 매주 한우, 한돈, 수입우육, 수입돈육 동향 조사발표와 축산 전문가들의 기고를 통해 국내산과 수입산 축산물의 유통시장 전망을 게재하는 단체다. 임원사로는 농협목우촌, 도드람푸드, 팜스토리한냉, 팜스코, 대성실업, 논산계룡축협, 성민글로벌, 농업회사법인 더한식품, 명주푸드, 부경양돈농협, 농업회사법인 돈마루 등을 포함해 국내 100여개 회사가 가입해 있다.

한국육류유통수출입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미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멕시코 등에서 돼지고기를 수입하고 있으며, 그 양은 매월 2만 7천톤에서 4만 톤 사이다.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돼지고기 수입량은 약 25만톤에 이른다. 한편 수출은 홍콩,마카오,캄보디아,베트남에 하고 있지만 지난 1월부터 8월까지의 통계를 보면 홍콩에 총 38톤을 수출한 게 전부다.

농림축산식품부 김현수 장관이 지난 26일 열린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 추진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농림축산식품부]

◇ “돼지 5억마리를 키우는 중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1억 마리가 폐사”

중국에서는 지난해 아프리카 돼지열병 발생 이후 돼지고기 값이 50% 가까이 치솟았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치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요소가 돼지고기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중국 요리 중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파육’(東坡肉)이 당송(唐宋) 8대가 중 한 사람인 소동파의 돼지고기 사랑에서 비롯됐다는 전설도 있을만큼 중국인들은 돼지고기를 즐겨먹는다. 전 세계 돼지고기의 절반 이상을 중국인들이 먹는다는 통계도 있다. 중국인들은 연 평균 1인당 40킬로그램의 돼지고기를 먹는다고 한다.

중국에는 돼지고기와 곡식이 세상을 편안하게 한다는 말(저량안천하: 猪糧安天下)도 있다.그래서 중국은 자국에서 키우는 돼지 5~6억 마리를 위해 미국에서 대두를 비롯한 값이 비교적 싼 사료곡물을 수입해 돼지고기 수급조절에 힘써왔다. 

그런데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업계추산 1억마리 정도가 살처분.폐사하면서 중국인들의 돼지고기 접촉면이 줄어든 것이다. 학교에서 상품으로 돼지고기를 주는 곳도 생겨나는 형국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시진핑 주석은 돼지고기 파동이 홍콩 문제나 미중무역전쟁보다 더 심각한 사안이라고 판단하고 돼지고기 가격 안정대책에 골몰하고 있다.

 

◇ 미국산 대두(콩) 72만 톤 구매가 중국의 ‘돼지파동’과 ‘미중무역전쟁’ 끝낼까?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미국도 그 영향을 받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돼지고기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것. 미국에서는 지난 두 달 동안 돼지고기 선물 가격이 60% 넘게 폭등했다. 이런 추세는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중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돼지고기 부족현상(돼지파동)이 미국으로 옮겨갈 것이란 걱정이 퍼져나가고 있다. 중국이 자국의 돼지고기 부족분을 세계각국에서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 수입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5억마리 이상의 돼지고기를 사육하면서도 상당량을 외국에서 수입해온 돼지고기 최대수입국이었기 때문.

이런 가운데서도 미중무역전쟁은 진행중이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미중무역전쟁의 판도를 서서히 바꿔가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을 사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내년 미국 대선 전에 미중무역전쟁이 끝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최근 9월 미중 무역협상에서 중국이 미국산 대두(콩)을 72만톤 구매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돼지파동’을 겪고 있는 중국에게 세계 3위 돼지고기(돈육)생산국인 미국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재선이 최대목표인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겐 재선을 위해 자신의 표밭인 미국농민들을 위한 카드를 중국에게 내밀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미중무역전쟁의 판도를 서서히 바꿔가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을 사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내년 미국 대선 전에 미중무역전쟁이 끝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사진=픽사베이]

 

◇ 평안북도 돼지가 전멸했다는 북한, 돼지콜레라 발생으로 어려움 겪는 일본

북한이 지난 5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병을 공식 신고했다. 이후 돼지열병이 북한 전역으로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고 국가정보원이 지난 9월 24일 밝혔다. 국정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평안북도의 돼지가 전멸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아울러 “북한 전역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널리 확산됐다는 징후가 있다”고 보고했다. 북한은 돼지축사 근무자들에게 추석 때 성묘도 못 가게 할만큼 돼지열병 확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국정원은 보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북한은 우리 정부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 협력 제의에 답변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국내에서 ASF 확진 사례가 발생하자마자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북한측에 방역대책을 공동진행하자는 대북통지문을 전달했다.하지만 이후 북한은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일단 북한측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까지 아프리카돼지열병(ASF)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일본에서는 2019년 9월 현재 '돼지콜레라' 확산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정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전에 돼지콜레라부터 잡아야한다며 백신 대량생산을 주문하고 나섰다. 돼지콜레라(hog cholera)는 ASF와 유사한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알려져있다. 백신이 존재하는 병이며 일본에서는 26년만에 다시 발생했다.

 

◇ 식량자급률 한국 27%, 북한 75%, 미국 127%, 독일 92%, 영국 72%에 담긴 뜻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미국, 북한, 일본 모두 아프리카돼지열병이라는 ‘태풍’의 영향권 아래에서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다. 돼지고기 하나로도 이런데 다른 곡물이나 식량 전체를 놓고 이런 상황을 가정했을 때 어떤 일일 벌어질지는 명확하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식량수출이 제한되고 피해가 발생하는 일은 국제사회에서 흔한 일이다.

통일부 등 관계기관의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자급률은 75%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민국의 식량자급률은 약 27%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식량안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식량자급률이 60%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대로라면 북한과 대한민국은 차이가 무척이나 크다.

말 그대로 식량자급률은 국내에서 소비하는 식량 중에 국내에서 생산한 식량이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일본 정부는 2025년도에 식량자급률을 45%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주요 선진국의 식량자급률(2010년~2015년 통계자료)을 보면 미국이 127%, 캐나다 258%, 독일 92%, 스페인 96%, 프랑스 129%, 네덜란드 66%, 스웨덴 71%, 영국 72%, 호주 205% 등인 것으로 나타나있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 역시 심각한 상황이다. 곡물자급률은 한 국가의 총 곡물 소비량 중에서 국내 생산 곡물 비율을 뜻하는데, 그 나라의 식량안보 수준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로 사용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산출한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최근 3개년(2015~2017년) 평균 23%. 세계 꼴찌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축이 먹는 밀, 콩 등 사료용 곡물을 포함해 우리나라 소비 곡물의 77% 이상이 외국에서 수입되는 것이라는 뜻이다.

반면 대부분의 국가들은 곡물자급률을 높여 식량안보를 유지.지탱하고 있다. 전세계 평균 곡물자급률은 101.5%. 호주의 곡물자급률이 290%로 가장 높았고, 캐나다는 178%, 미국은 125%로 나타났다. 이웃나라인 일본은 27.2%, 중국은 97,5%로 우리나라보다는 높았다.

아마도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여러 가지 일 것이다. 방역시스템 정비, 백신개발, 축산농가 피해보상 시스템 개선 뿐 아니라 식량자급률과 곡물자급률 제고 역시 그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식량자급과 곡물자급이 곧 안보’라는 말이 세계 각국의 아프리카돼지열병 위기대응을 통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2019년. ‘식량이 곧 안보’라는 말을 되새겨볼 때가 바로 지금 아닐까.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저작권자 © 한국영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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