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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무역 분쟁, 농업 분쟁으로 번지나?

기사승인 2019.07.21  00: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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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쿠시마 농산물 검역 강화로 선제 대응... 종자 국산화 등 농업 경쟁력 제고 계기로 삼아야

한일 무역분쟁이 양국의 화두로 떠오른 이후, 한국과 일본 장관급 고위관계자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연일 헤드라인 뉴스가 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에선 일본 브랜드 불매운동, 일본 관광 취소에 이어 금모으기 까지 인기검색어로 떠올랐다. 유니클로, 미쓰비시, 도요타 ,롯데 등 일본제품이거나 일본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들이 한국 네티즌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모양새인데, 이유는 물론 불매를 위한 사실 확인 작업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사지 않아야 할, 사면 안 되는 일본 제품’을 대신할 한국 상품 또는 타국 제품정보를 공유하는 ‘노노재팬’이라는 사이트도 등장했다. 예를 들어 일본 화장품 우르오스는 ‘이니스프리 올인원’으로, 일본 악기 야마하는 한국 ‘영창’, ‘삼익’으로, 일본 가전제품 소니(sony)는 한국의 '엘지‘-’아이리버‘로, 일본 담배 마일드세븐은 한국담배 ‘디스’-‘레종’으로, 일본 스포츠드링크 ‘포카리스웨트’는 미국 ‘파워에이드’로 대체 소비하자는 취지다. 현재까지 사이트에 등록된 불매 대상 제품은 60여 개. 한일 무역분쟁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이 사이트 노노재팬에 등록되는 일본 브랜드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런데 한국을 벗어난 다른 국가들에서도 이런 현상, 즉 일본제품 불매는 이루어지고 있을까? 혹자는 ‘그럴 리는 없다!’라고 대답하겠지만, 사실 몇 년 전부터 전 세계 23개 국가에서는 일본산 농산물 수입규제가 이루어져 왔다. 맞다. 바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농산물에 대한 수입규제를 해온 23개 국가를 말함이다. 후쿠시마 농산물을 외국에서도 꺼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1년 앞으로 다가온 도쿄 하계올림픽의 '아킬레스건' 역시 후쿠시마 농산물이다. 2011년 원전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지역은 일본 내 손꼽히는 농수산물 공급지다. 사정이 그러하기에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후쿠시마에서 생산된 농수산물을 올림픽 선수단에 제공할 방침을 세웠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후쿠시마 산 농산물과 수산물을 직접 먹는 장면을 자주 언론에 흘리고 있기도 하다.

그러자 국제기구 차원에서도 “이건 아니다”라는 분위기가 번져가고 있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후쿠시마산 식재료를 올림픽 선수단에게 제공하는 문제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각 국의 에서도 문제가 될 사안이다. 식음료 서비스는 선수단 안전과 직결되어 있기에 그렇다"라고 이의를 제기할 뜻을 내비쳤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인근 지역에서 재배된 쌀이 영국에서도 유통되고 있으므로 주의할 것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후쿠시마 인근 농산물과 수산물에 대한 수입은 한국과 일본이 WTO에서 일합을 겨뤘던 사안이기도 하다. 그러던 게 2019년 4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인근 수산물 수입이 앞으로도 전면 금지된다는 결정이 났다. 명태·고등어 등 후쿠시마 인근 8개 현의 모든 수산물이 대상이다. 일본이 WTO 최종심에서 패소함으로써 한국과 일본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분쟁은 한국에 유리하게 마무리됐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WTO 협정을 위배했다며 제소한 지 4년 만의 일이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온라인 유행어인 ‘뒤끝 작렬’이 시작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 15일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이 전례 없이 과거사 문제를 경제 문제와 연계시켰다"며 "이는 양국 관계 발전의 역사에 역행하는 대단히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일을 우리 경제의 전화위복 기회로 삼겠다는 정부 의지는 확고하다"고 강조하면서 "국민 여러분께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기업들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사진=청와대]

 

◇ 일본 브랜드 불매운동 이어 후쿠시마 농수산물이 전세계적 관심사로 부상

지난 7월 4일, 일본이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3개 품목에 대해 한국이 건별로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한다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이후 2주일 쯤 지난 7월 16일, 한국 반도체 업체가 일본이 수출규제에 나선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핵심소재 중에서 불화수소(에칭가스)를 중국 화학기업으로부터 받기로 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일본이 아닌 타국에서 수입해서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는 한국기업의 의지가 읽히는 대목.

하지만 비단 반도체만이 문제는 아닌 것으로 우리 당국은 걱정하고 있다. 일본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농업 분야에도 일본이 수입규제를 취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언론은 일본 정부가 한국 농산물과 식품에 대해 추가 수출입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이 우리나라 농산물 중에서 일부 신선 채소에 가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의 주요 대일 수출 농식품은 김치, 파프리카, 토마토 등이 있는데, 특히 지난해 파프리카 대일 수출 비중은 99%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치 역시 우리나라 제품이 가장 많이 수출되는 나라가 일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일 농림축산식품 수출액은 약 13억 2천만 달러로 우리돈 1조 5천억원에 달한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농림축산 수출의 약 20%에 해당하는 수치. 대일 수산물(참치, 김 등) 수출 역시 지난해 약 7억 6천만 달러, 우리 돈 9천억원 정도로 전체 수산물 수출의 약 32%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 전체수출 농산물의 20%, 수산물의 32%를 차지하는 일본이 우리 농수산물에 대해 무역보복조치를 취한다면 그 피해는 2조원 안팎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개호 농림부장관은 일본이 규제를 통한 보복을 한다면 비관세장벽인 검역규제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일본은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금지 분쟁판결에서 이미 WTO(세계무역기구)에서 한국에 패하고 나서 사실상 규제를 통한 보복조치를 시행중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지난 5월 말 한국산 넙치와 생식용 냉장 조갯살인 피조개, 키조개, 새조개, 성게 등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 방침을 발표했다. 한국산 넙치에 대해선 전체 수입량의 검역 대상을 현행 20%에서 40%로 상향 조정하고, 구토와 설사를 동반하는 ‘쿠도아’ 기생충 등의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 전체수출 농산물의 20%, 수산물 32% 차지하는 일본. 농업분야 보복 가능성은?

이런 분위기 속에 최근 희소식이 전해졌다. 농촌진흥청은 딸기의 경우 일본 품종인 장희, 육보를 대체해 설향ㆍ죽향ㆍ매향 등 8개의 우리 품종을 개발, 국내 보급률을 94.5%까지 끌어올렸다는 것. 이 같은 성공 경험을 사과 등 분야로 확대해 일본 의존도를 낮추어야 한다는 의견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산 품종 종자 보급률 중 딸기는 대표적인 우수 사례로 거론된다. 딸기는 2006년부터 로열티대응연구사업단을 중심으로 설향, 매향 등 품종 육성과 재배 기술 개발 및 보급으로 국산화에 성공했다. 최근 10년간 522품종을 개발ㆍ보급해 로열티 사용료를 77억원 절감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일본 여자컬링 대표팀 선수들이 휴식시간에 우리나라 딸기를 먹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 농림수산부 장관이 “일본여자 컬링 대표팀 선수들이 일본 딸기를 먹었다면 더 좋은 성과를 냈을 것이다. 어쨌거나 한국 딸기의 뿌리는 일본이다”라고 말한 게 온라인 상에서 양국 네티즌들의 ‘딸기전쟁’으로 이어진 바 있다.

농업전문가들은 종자산업이야말로 우리 농업발전의 열쇠이며 농업의 일본 의존도를 낮출 열쇠라고 지적하고 있다. 종자는 또한 식량 안보와 직결되는 중요한 분야다. 하지만 세계시장과 비교해 한국의 종자시장은 약 1%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골든 씨드 프로젝트(GSP)를 통해 2020년까지 종자 수출 2억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종자 수출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2013년 이후 2018년까지 종자 수출 실적은 약 1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2005년 9.2%에 불과했던 국산 딸기 품종의 점유율은 2018년 94.5%로 높아졌으며, 수출액도 2005년 4백4십만 달러에서 2018년 4천8백만 달러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사진은 충남도와 농진청이 협력해 개발한 국산딸기 품종 '설향' [사진=농촌진흥청]

◇ 일본 품종 대체한 국산 딸기 종자의 쾌거, 국산 종자 보급률 94.5% 이뤄내

국내 굴지의 종자기업 아시아종묘는 재배안정성이 뛰어난 다양한 품종을 개발해 국내와 해외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는데, 골든시드프로젝트(Golden Seed Project, GSP) 사업을 통해 채소, 원예, 식량분야에서 배추, 무, 양배추, 고추, 토마토, 양파, 수박, 옥수수 등의 연구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아시아종묘는 또한 동남아 시장에서 요구하는 품종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미얀마, 태국 지역도 아시아종묘의 사업영역으로 꼽힌다. 혈당억제 효과가 있는 ‘미인풋고추’와 일본산 양배추를 대체하며 국산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윈스톰 양배추’ 등으로 유명하다.

윈스톰 양배추는 국내 종자업계 최초로 ‘IR52 장영실상’ 수상(기술혁신상) 제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윈스톰 양배추가 개발되기 전 국내 겨울철에 재배되는 양배추는 전량 수입품종이었다. 2014년 7월 윈스톰 양배추가 보급되면서 제주도, 무안, 진도, 해남을 중심으로 일본산 품종이 차지하던 자리를 윈스톰 양배추가 차지하고 있다.

아시아종묘는 “순도 100% 고순도 양배추이므로 재배 농민들은 일본양배추를 심는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윈스톰’양배추는 중국의 월동재배지역에서도 탁월한 성능을 발휘하여 중국거래처로부터 종자주문이 쇄도하고 있어 앞으로 수입대체 뿐만 아니라 수출도 많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종묘는 북한에 10년 넘게 종자를 제공해 오며 농업발전의 초석을 다지고 있기도 하다.

 

◇ 종자 국산화 등 농업 경쟁력 제고와 함께 먹거리 공급 체계 원점에서 재점검해야

앞서 언급한 농촌진흥청의 딸기와 아시아종묘의 양배추 처럼 일본 종자를 능가하고 대체하는 종자 및 작목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에 농촌진흥청(청장 김경규)은 ‘지역특화작목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하 지역특화작목법) 시행으로, 지역농업 연구개발을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지역특화작목 육성을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농촌진흥청은 1991년부터 지역전략작목을 육성하고, 그에 필요한 기반조성을 지원하는 '지역농업연구기반 및 전략작목육성 사업'을 추진해 왔다.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농촌진흥청과 지자체가 협력해 추진한 국산품종 딸기 육종과 수출 산업화를 들 수 있다.

이런 사례는 많다. 농우바이오와 세도농협산지유통센터는 지난해 8월 ‘대추형 방울토마토 ‘TY하이큐’ 평가회 및 설명회‘를 개최했다. 농우바이오는 지난 2007년 국내 처음으로 대추형 미니찰 토마토 품종을 출시한 이래 국내 방울토마토 종자 시장을 수입종 원형에서 국산 대추형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 받고 있다. ’TY하이큐’ 방울토마토 종자보급으로 외국에 지불하는 로열티가 연간 약 20억 원이 절감됐다.

요즘 가격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양파 역시 수입종자 비중이 70%에 가깝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양파 역시 일본 교배종자가 득세하고 있다. 양파를 중장년층에서는 일본어 ‘다마네기’로도 부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이런 사정 속에서 농촌진흥청은 킹콩이라는 종자를 개발해 보급중이며 점점 종자점유율은 높아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골든씨드 프로젝트는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에서 주관하고 있는데, 양파는 우선 일본 수입종을 대체하는 우수 국산 품종 개발 및 수출용 품종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밖에도 일본 종자 뿐 아니라 외국종자를 대체할 우리 종자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시작할 때가 되었다. 식량안보의 범위에 종자안보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본 기업과의 가장 큰 이유는 신뢰였다. 일본 기업들은 한 번 계약을 맺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한 재화와 용역을 제때 공급해왔다. 그러나 이번 일본 정부의 수출 제한 조치로 이러한 불문율이 깨졌다.

농업 문제도 각별히 고민해야 한다. 일본으로부터 받고 있는 종자가 어느 날 전략물자로 둔갑되어 수입이 금지될지 모를 일이다. 나아가 제2, 제3의 일본이 나와서 한국에 먹거리 수출을 금한다고 발표하면 어떻게 될까? 그 때는 돈이 문제가 아니다. 먹거리 확보에 차질이 생긴다면 몇 몇 기업이 죽고 사는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농업이 공동체를 살리는 생명산업이자 국가의 안보와 직결된 일임을 지금까지 잊고 있었다면 이번 한일 무역 분쟁을 지켜보고 있는 정부 당국과 농업계는 심기일전해야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를 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동물에게 먹일 사료까지 포함하면 23%, 사람이 먹는 식용식량 자급률만 따져도 49%로 대부분의 칼로리를 외국에서 수입한다. 전세계 꼴찌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냉전의 종식으로 자유 무역의 시대가 저물고 자국 이익을 우선하는 보호무역의 시대로 접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동맹의 의리보다는 선거에서의 승리 등 개별 국가의 정치-경제적 이익 때문에 자유 무역의 원칙이 얼마든 어긋날 수 있다는 의미다. 

지금은 지천에 널려 있는 수입 농산물들이 언제 일본산 불화수소처럼 못사는 물건이 될지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공산품의 국산화만큼 어려운 것이 농산물의 국산화다. 한번 무너진 후 회복을 못하고 있는 좋은 사례가 우리 밀이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밀 자급률은 9%. 밀 농사의 경우에서 보듯 농민들이 사라지고 농사가 끊어지면 다시 일으켜 세우기는 아주 어렵다.

우리가 반도체 공장 가동을 멈추지 않게 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과 관심에 반의 반이라도 농산물 자급률을 높이는데 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것이다. 농정 당국은 기술이전료를 내고 있는 종자를 비롯해 농-축-임-수산까지 우리 먹거리 전반에 걸쳐 공급 체계에 위험 요소는 없는지 냉정하게 따져보고 점검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설마가 사람 잡는 일'이 우리 눈앞에서 생생히 벌어지고 있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될 노릇이다.

이병로 기자 leebr@youngnong.co.kr

<저작권자 © 한국영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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