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립축산과학원 박범영 원장

2022-08-31  18:34:39     이광조 기자

[한국영농신문 이광조 기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육류를 많이 먹을까, 곡식류를 많이 먹을까? 정답은 육류다. 2020년 기준 소ㆍ돼지ㆍ닭ㆍ계란ㆍ우유 등 5대 축산물의 연간 1인당 섭취량은 153.2㎏으로 양곡 총 소비량 보다 44.7㎏ 많다. 보릿고개를 기억하는 어르신들이 계신데, 이젠 밥보다 고기를 더 많이 먹는 시대가 됐으니 상전벽해다. 한 번 길들여진 입맛은 좀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다. 쌀과 더불어 축산물은 우리 국민의 주요 먹거리 자원이 됐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국제 식량 가격이 오르내리면서 식량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쌀은 자급률이 높지만 육류는 여전히 수입량이 상당하다. 

축산업계는 시장 개방에 따른 자급률 하락, 가축분뇨 등 환경문제, 사료값 상승 등 구조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난제를 풀 책임을 국립축산과학원이 지고 있다. 우리 국민들에게 양질의 단백질 식품을 제공하는데 필요한 기술을 연구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또한 지금까지 생산성을 높이는 스마트 축산기술에서 반려동물용 기능성 펫푸드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성과를 내왔다. 국립축산과학원을 이끌고 있는 박범영 원장이 말하는 국내 축산업의 현안과 과제를 들어봤다. 

국립축산과학원 박범영 원장

- 축산과학원이 하는 일을 국민들에게 쉽게 설명한다면 ?

농촌진흥청 소속 국립축산과학원은 국내 유일의 축산분야 국립연구기관으로서 국정과제와 정책을 뒷받침하고 축산업의 현안 문제를 앞장서 해결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히 임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소개하면 한우, 젖소, 돼지 등 주요 가축의 개량 총괄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가축 사육과 관련된 제반기술을 개발해 축산 현장에 보급하고 있다. 국민에게는 보다 저렴하고 안전한 양질의 단백질 식품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기술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또한 축산업으로 인한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가축분뇨 퇴비화, 에너지화 등에 관한 기술 개발, 온실가스 발생을 줄일 수 있는 기술 등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면서 농장동물 복지를 고려한 시설환경 개선 연구도 추진 중이다. 그 외에도 축산물의 부가가치 향상과 안전한 축산물의 생산 공급 유통기술 개발, 기능성 펫푸드 개발 등 축산업과 연관 산업의 발전을 지원하는 연구 등도 수행하고 있다.

- 축산업은 농업 생산액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농업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축산은 4차 산업혁명의 가속화, 시장개방의 확대, 가축 질병 발생, 기후변화 등으로 급속한 환경 변화에 직면해 있다. 우리 축산업의 나아갈 방향을 큰 틀에서 제시한다면?

우리나라 축산업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발전과 성장을 거듭해 농업 총 생산액의 약 40%를 차지하는 농업의 중심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국민 1인당 소, 돼지, 닭고기 및 우유, 계란 등 5대 축산물 소비량의 경우 2012년을 기점으로 양곡 총 소비량을 넘어섰으며, 2020년에는 5대 축산물 1인당 소비량이 양곡 총 소비량 보다 44.7㎏ 많은 약 153.2㎏에 달했다.

축산물이 우리가 이제까지 주식으로 생각하고 있던 양곡 이상 주요 식품산업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축산업이 국가 식량안보와 국민 건강에 반드시 필요한 산업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축산업의 위기는 식량안보의 위기, 국민 건강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현안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축산업을 둘러싼 외부 환경의 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대부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기에 정부, 대학 및 연구소, 산업체 등과 활발하게 소통하며 함께 차근 차근 풀어나가야 한다고 본다. 스마트 축산으로 전환, 시장 개방 확대에 따른 경쟁력 강화, 기후변화 대응 기술, 가축 질병 대응 기술 등 다방면으로 연구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충분히 극복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축산과학원은 ‘맞춤형 기술개발’의 요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이루어낸 대표적인 성과를 몇 개만 소개해 달라.

축산농가의 노동력 절감과 정밀 축산 구현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스마트 축산 핵심기술 개발과 현장 실용화가 중요하다. 지난해에는 스마트 낙농 핵심장치인 로봇착유기 국산화에 성공했으며, 올해는 로봇착유기 완성도 제고와 보급 확대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현장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더불어 AI 기반 번식·질병 등 정밀관리 종합의사결정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로봇착유기의 시스템을 고도화할 예정이다.

농장에서 생산된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가축 사양관리 관련 ICT 장치 표준화로 호환성을 확보해 왔다. 가축 개량을 위한 자료수집 자동화를 위해 3D 이미지와 AI 기술을 접목한 가축 능력검정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의사결정 알고리즘을 적용한 교배계획 프로그램도 개발할 계획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한 2050 탄소중립과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에 따라 우리 기관은 축산분야 국가고유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확하게 산정하는데 필요한 온실가스 배출·흡수계수를 개발하고, 축산분야 장내발효와 분뇨처리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정해 보고하고 있다.

소와 같은 반추가축의 소화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 발생을 줄이기 위해 저메탄 사료 개발 연구도 진행하고 있으며, 퇴·액비 생산 등 자원화 방식으로 처리돼 왔던 가축분뇨를 에너지로 활용하는 기술 연구도 한창이다. 우분(소똥)을 석탄과 같은 고체연료로 이용하는 가공 기술을 개발한 바 있으며, 지금은 연료효율을 높이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사료값 상승은 시급히 풀어야 할 현안 중에 하나다. 수입 사료 의존도가 높은 국내 축산업 특성상 과거부터 관련 기술 개발에 힘써왔다. 특히 ‘자가 TMR(섬유질 배합 사료) 제조 기술’은 수입 곡물 사료보다 저렴한 국내 농식품 부산물을 사료 원료로 활용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적용 농가에서는 사료비 절감은 물론 육질 향상으로 소득이 향상되는 효과가 확인되고 있다. 보다 많은 농가가 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보급 확대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풀사료 수확기 잦은 비와 모내기 실시 등 건초생산에 불리한 국내 여건을 극복하여 안정적인 건초 생산에 도움을 주고자 ‘열풍이용 건초생산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동안 담근 먹이(사일리지) 위주로 생산되던 국산 풀사료는 수분 함량이 균일하지 않아 축산농가의 불만 사항으로 작용했고, 이는 국산 풀사료 작물의 재배 및 이용 확대에 한계점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열풍이용 건초생산 시스템’으로 안정적인 건초 생산이 가능하면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령화와 1인 가족 증가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늘고 있으며 관련 산업 규모도 커지고 있다. 우리기관에서는 동애등에, 흑삼, 새싹보리 등 국산소재를 활용한 기능성 펫푸드를 개발해 왔다. 또한 성견과 노령견의 체내 소화율 분석으로 단백질 소재별 영양가치를 평가하고 있으며, 농식품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가칭)'반려동물 사료관리법'의 입법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 최근 우리흑돈의 유전적 차별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는 보도자료를 낸 적이 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다.

‘우리흑돈’은 국내 흑돼지 시장 국산화를 이끌기 위해 국내 재래돼지와 자체 육성한 ‘축진듀록’을 활용해 개발한 계통으로 재래돼지의 육질을 가지면서도 성장 능력이 우수하다. ‘우리흑돈’이 재래돼지를 활용해 육종한 계통이긴 하지만 실제로 재래돼지의 혈통을 잇고 있는지, 독립적인 계통인지, 육질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가 재래돼지에서 비롯된 것인지 등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를 찾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 과학적 근거는‘우리흑돈’을 개량하고 또 새로운 계통 조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덧붙여 말씀드리면, 국립축산과학원은 국내 가축유전자원인 토종가축을 활용해 신품종을 개발하고 산업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발한 흑돼지 종돈의 산업화 촉진을 위해 ‘우리흑돈’과 ‘난축맛돈’의 보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우리흑돈’을 이용한 다산성(모계) 흑돼지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알 낳는 토종닭 개발을 위해 산란능력이 우수한 토종닭 개량을 시도하고 있다. 산란능력과 달걀 품질이 우수한 산란용 토종닭으로 농가 현장 시험도 병행  중이며, 소비자의 반응도 조사할 계획이다. 국립축산과학원에서 국내 고유 가축유전자원을 활용해 육성함 품종, 계통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사료값이 오르고 있다. 최근 사료 급이를 줄임으로써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는 한우사육방식을 주장한 것으로 안다. 농촌진흥청, 농협중앙회 등과 함께 ‘소 사육방식 개선 시범사업'을 얼마 전에 착수했다고도 들었다. 이에 대한 설명 부탁한다.

우리나라는 가축 급여용 배합사료 생산에 이용되는 사료용 곡물 90% 정도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제곡물 가격 변동성이 클수록 국내 축산농가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에는 이상기상, 코로나19, 전쟁 등으로 곡물가격이 가파르게 오른 데다 한우 사육 마릿수 증가로 인한 가격 하락도 걱정되는 상황으로 생산비 절감이 중요한 시기이다.

이러한 가운데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촌진흥청과 농협중앙회 등과 함께 ‘소 사육방식 개선 시범사업’을 얼마 전에 착수하였다. 이는 사료비 상승으로 인한 한우 농가의 경영비 부담을 덜고 사육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했다.

우리나라 한우 사육방식을 짚어 보면 비육기에는 전체 사료의 80% 내외를 곡물 사료로 급여하고 있으며, 육질 향상을 위해 평균 30개월 이상 장기 비육을 한다. 후반기에는 먹은 사료의 절반 이상은 몸을 유지하는 데 이용되어 생산비 증가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소 사육방식 개선 시범사업’은 한우 거세우 사육 농가의 소득에 영향을 미치는 생산성과 육질을 고려한 비육기간 단축을 목표로 한다.

일부에서는 체중 저하와 육질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립축산과학원은 2018년에 28개월 단기 비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이를 통해 사육한 28개월령과 32개월 사육한 소고기가 육량, 육질에 있어 차이가 없음을 확인했다. 또한 농촌진흥청 주관 한우 거세우 단기 비육 기술 보급 시범사업에 참여한 17개 농가의 성적을 분석한 결과, 사료비는 평균 9.2% 절감되었고 농가 소득은 29% 향상되었다.

- 끝으로 국립축산과학원장으로서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국립축산과학원은 1952년 중앙축산기술원이란 이름으로 발족한 이후 올해로 70년을 맞이했다. 돌이켜 보면 지난 70년은 축산업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온 자랑스러운 시간이었으며, 동시에 많은 숙제를 안겨 준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축산업계의 수많은 노력으로 국민 건강에 꼭 필요한 영양소원인 축산물의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했다는 점이고, 이는 많은 축산인들의 보람이기도 하다.

축산업은 여전히 기후변화, 환경 부담에 따른 부정적인 인식, 가축 전염성 질병, 시장 개방 확대 등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지속 가능한 축산업은 이러한 과제들을 하나 둘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실현 가능해질 거라 생각한다. 국립축산과학원은 끊임없는 축산기술 혁신으로 축산인과 국민에 진정 도움이 되고 희망을 주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