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재만큼 소중한 '식품명인'

2021-06-21  07:09:49     이광조 기자

[한국영농신문 이광조 기자] 

“며느리도 몰라~ 아무도 몰라~” 오래전 신당동 떡볶이집 주인 할머니가 TV광고에 등장해 유행시킨 말인데, 혹자는 그게 며느리라서 그랬을 거라고도 했다. 물론 농담이었겠지만, 그렇다면 떡볶이집 사장 할머니는 자신의 아들에겐 매출의 핵심인 떡볶이 양념비법을 일러줬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 비법을 전해들은 아들은 자신의 아내(사장 할머니가 볼 땐 며느리)에게 입을 꾹 다물었을까? 정말 그랬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일지만, 어쨌거나 정답은 ‘할머니 마음대로’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말고는 순전히 할머니 맘 이었을 거라는 뜻이다. 추측하기론 아마 아들도 알고 며느리도 그 비법을 잘 알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현재도 신당동이 떡볶이로 유명한 건 그런 비법의 대물림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법에 관한 일화는 신당동 떡볶이집에만 있는 건 아니다. 롱런하면서 인기도 높은 TV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개 “친정 엄마(또는 아빠)가 그렇게 하시길래 따라서 하고 있어요”라든가, “스승의 비법에 제 개인적인 레시피를 추가했어요”라는 식의 비법 전수의 변을 늘어놓곤 한다. 물론 끝내 그 비법의 전모를 공개하지 않는 ’달인‘들도 수두룩하다. 어쨌거나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에 소개된 ‘맛집’이나 ‘달인’들은 기존의 입소문에 더해 TV출연이라는 또 하나의 날개를 달고 대부분 승승장구한다. 매출도 늘고 유명세도 치르고 식품기업들의 제휴 제안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식품명인은 나라가 공인한 식품 지킴이이자 마스터들이다. 사진은 대한민국식품명인으로 지정된 김연박 명인이 누룩 디디기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농식품부]

◇ 식품명인은 국가 공인제도... 제1호 송화백일주부터 전주비빔밥, 청국장 등 포함

그런데 우리나라엔 ‘생활의 달인’ 예능 프로그램이 나오기 한참 전부터 우리 식품의 명맥을 이어오며 달인 이상의 명예를 인정받아온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대한민국식품명인’ 이라고 부른다. 생활의 달인이 일부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바탕으로 TV프로그램화 된 것이라면, 식품명인은 나라가 공인한 식품 지킴이이자 마스터들이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식품명인 1호는 누굴까? 그리고 어떻게 지정되었을까? 흥미로운 점은 1994년에 탄생한 제 1호 식품명인이 바로 전통술을 빚는 스님이라는 사실. 전북 김제 모악산 중턱에 자리한 수왕사라는 사찰에서 전통주인 송화백일주를 빚어온 벽암스님(속명 조영귀)이 바로 그 주인공. 송화백일주는 원래 스님들이 마시던 곡차로 알려져 있다. 벽암스님은 송화백일주 12대 전승기능 보유자인데, 스승인 석우스님으로부터 비법을 전수받았다.

송화백일주는 1998년에 농수산 대축제 품평회에서 국내 민속주 최초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세상에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소나무에서 채취한 노란색 송화가루로 술을 빚는 게 특징. 스님이 웬 술이냐는 우문에 “산중 사찰에 오래 거주하면 고산병과 냉증에 걸리기 쉬운데, 이를 치료하기위해 불가에선 각종 비방을 품은 비상약 개념으로 이러한 술, 곡차를 빚어온 것”이라는 현답을 내어 놓는다. 전설에 따르면, 술 담당 공무원이 그 맛과 향에 반해 식품명인 ‘1호’ 로 적극 추천하면서 송화백일주는 빛을 보게 된 것이란다. 믿거나 말거나.

제 1호 타이틀을 보유한 송화백일주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도는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전통식품의 계승·발전과 가공기능인의 명예를 위하여 지정하여 보호·육성하는 제도. 전통식품과 전통식품 외의 일반식품 등 두 분야로 구분해서 운영한다. 2020년 현재 약 80여명이 선정된 것으로 집계된다. 재미있는 점은 제 1호부터 제 13호까지의 전통식품 명인은 모두 술을 빚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제1호 조영귀 송화백일주, 제2호 김창수 금산인삼주, 제4-가호 이성우 계룡백일주, 제6호 박재서 안동소주, 제7호 이기춘 문배주, 제9호 조정형 전주이강주, 제10호 유민자 옥로주, 제11호 임영순 구기자주, 제12호 최옥근 계명주, 제13호 남상란 민속주왕주 등이 그들이다.

이밖에도 제14호 홍쌍리 매실농축액, 제16호 박수근 수제녹차, 제21호 유영군 창평쌀엿, 제25호 오희숙 부각제조, 제29호 김순자 포기김치, 제36-가호 조종현 순창고추장, 제37호 권기옥 어육장, 제39호 김년임 전주비빔밥, 제41호 임장옥 감식초, 제48호 송명섭 죽력고, 제55호 김영희 인삼정과, 제56호 정계임 진주비빔밥, 제58호 이하연 해물섞박지, 제62호 서분례 청국장, 제63호 김영근 도토리묵, 제65호 백정자 즙장, 제68호 강경순 오메기술, 제70호 김명자 옥수수엿, 제72호 임화자 쇠고기육포, 제77호 문완기 식혜, 제81호 구경숙 기정떡(증편), 제82호 박규완 가리구이(갈비의 옛명칭), 제86호 임경만 보리식초 등이 식품명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전주비빔밥, 진주비빔밥, 도토리묵, 옥수수엿, 가리구이(갈비구이), 청국장, 순창고추장도 식품명인 리스트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앞서 나열한 80명 식품명인 중에는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경우(송화백일주, 문배주 등 주류 대부분) 도 있지만, 주류가 아닌 경우에는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경우가 없다는 점도 특이점이라 하겠다.

한 식품명인 당 월 100만원을 지원한다고 치면 1년 소요예산은 약 10억 정도로 추산된다. 전통을 지켜온 식품명인들에게 쓰는 돈 치곤 그리 큰 액수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다. 사진은 대한민국 식품명인 인증마크

◇ 생활의 달인, 식품명인, 무형문화재의 처우...뭐가 다를까?

이렇듯 대한민국식품명인제도는 우리 식품의 우수성을 이어온 가공과 조리 분야 장인을 지정하는 인증제도다. 식품명인이라는 이름 앞에 대한민국 국호가 있는 그야말로 식품 명예의 전당 같은 위상을 자랑한다. 20년 이상을 한 분야에서 전통방식을 지켜왔는지가 관건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대한민국식품명인 지정 공모를 진행한다. 매년 하는 행사인데, 신청 자격은 ▲해당 식품의 제조·가공·조리 분야에 계속해서 20년 이상 종사한 자, ▲전통식품의 제조·가공·조리방법을 원형대로 보전하고 있으며 이를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자, ▲대한민국식품명인으로부터 보유기능에 대한 전수교육을 5년(명인 사망 시는 2년) 이상 받고 10년 이상 그 업에 종사한 자 등 총 3가지 중 하나 이상을 갖춰야만 하는 까다로운 과정이다.

절차는 다음과 같다. 신청자가 각 시·도 농식품산업 담당부서에 신청 서류를 갖춰서 제출하면 → 시·도 지자체는 사실관계와 적격 여부 검토 → 농림축산식품부에 추천 → 농식품부 검토 및 식품산업진흥심의회 심의 → 12월 중 명인이 최종 지정되는 과정이다.

대한민국식품명인에 오르면 당사자가 제조한 식품에 대한민국식품명인 표지를 부착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다 일까? 뭔가 더 대접할 게 있어야만 하는 거 아닐까? 정말로 이것뿐일까?

식품명인은 그 이름과 하는 일에 비례해 제대로 대접받고 있을까? 그건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문화재청의 무형문화재, 고용노동부의 대한민국명장, 그리고 농림축산식품부의 대한민국식품명인에 대한 처우를 비교해보면 이 점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우선 숫자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이들 중 가장 많은 숫자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명장. 고용노동부에서 고시한 37개 분야 97개 직종에서 15년 이상의 경력자를 대상으로 기계, 재료, 전기, 통신, 조선, 항공 등의 산업분야와 금속, 도자기, 목칠 등 분야에서 선정된 기능인을 말한다. 2020년 현재 653명.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되면 대통령 명의의 명장 증서'휘장'명패를 받고, 일시장려금 2천만 원을 받는다. 동일 직종에 계속 종사하면 매년 200만~400만 원의 계속종사장려금을 지급 받는다.

무형문화재는 2020년 현재 제1호 종묘제례악에서부터 제 142호 활쏘기까지 148종목에 보유자 173명이다. 보유단체 70, 전수교육조교 251명, 명예보유자 34명 등이다. 이들에게는 전승지원금이 지급되는데, 국가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에게는 월 150만의 전승지원금이 지급된다. 예능보유자는 전승교육사를 둘 수 있다. 이들에게도 월 70만 원 정도가 지급된다. 세 명까지 지정할 수 있는 전수장학생에게는 각각 월 27만 5천 원이 지급된다.

반면 식품명인은 1994년부터 현재까지 식품분야에서 80명이 지정되어 있지만, 2019년 처음으로 식품명인 전수장려금 제도가 시행됐다. 2019년 1월 총 62명의 전수자가 지정됐다. 이는 식품명인들이 꾸준히 요청해왔다. 명인은 교육계획서를 제출하고 월 2회(분기별 6회) 이상 교육을 하고, 전수자는 사진 또는 동영상 자료가 첨부된 교육실적보고서를 제출하는 게 기본 뼈대. 교육 횟수에 따라 1년에 4회 (1년 400만~600만 원) 차등 지급한다.

하지만 식품 명인들이 무형문화재나 명장과 비교해 느끼는 상대적인 박탈감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식품명인 당 월 100만원을 지원한다고 치면 1년 소요예산은 약 10억 정도로 추산된다. 전통을 지켜온 식품명인들에게 쓰는 돈 치곤 그리 큰 액수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다.

물론 문제점도 있다. 전통주 등에 가짜 식품명인 표지를 부착해 판매한 사례가 적발되면서 식품명인 제도의 사후관리를 강화 법안도 지난해 발의된 바 있다. 이주환 의원(국민의힘)은 가짜 식품명인 지정 상품 유통시 해당 표시를 제거하거나 사용정지 등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식품산업진흥법을 발의했다. 실제로 감사원 감사에서도 가짜 식품명인 지정 상품 유통 사례가 지난해 4건이 적발됐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일 것이다. 사람을 먼저 대접해야 무형의 문화유산이 대대손손 이어져 우리 문화를 빛내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