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자원, 알아보고 꿰어야 '보배'

2021-05-09  22:21:40     이병로 기자

[한국영농신문 이병로 기자] 

남의 것을 가져다가 지혜롭게 사용한 예로 우리는 흔히 고려말 문익점을 떠올린다. 반대로 우리 것을 지키지 못해 외국으로 유출돼 남의 것이 되어버린 예로 크리스마스트리, 구상나무(Abies koreana)를 꼽곤 한다. 구상나무의 학명에 나와 있듯이 Koreana(코리아나)는 바로 한국, 우리나라를 가리킨다. 구상나무라는 이름도 제주도 방언 ‘쿠살낭’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쿠살은 바다생물 성게의 제주도 방언. 구상나무의 영어 이름은 ‘Korean Fir’, 한국 전나무다.

그런데 만약 '나고야의정서'라는 게 100년 전에도 존재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나고야의정서는 각국의 유전자원,생물자원의 이용으로 발생하는 이익을 공유하는 국제협약이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나라는 나고야의정서를 등에 업고 어마어마한 크리스마스트리 사용료(로열티)를 받고 있을 것이다. 그 액수는 가히 천문학적일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고, 우리나라는 구상나무 사용료, 즉 로열티를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있다.

1910~1920년경에 우리나라로부터 서양으로 유출된 구상나무는 유럽의 몇몇 문헌에 등장하다가 이윽고 여러 나라에서 상업적으로 개량되고 판매됐다. 국립생물자원관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2년 현재 약 90품종 이상이 미국, 캐나다, 영국, 네덜란드의 100여개 종묘사에서 판매중이다. 당연히 이들 90품종의 로열티를 받는 주체는 품종을 개량한 각국의 종묘사들이지 우리나라는 아니다.

이런 예는 더 있다. 상당히 많다. 서구에서 미스킴라일락이라고 불리는 털개회나무도 역시 우리나라가 원산지다. 1945년 광복 이후 미국 농무성 관리 한 사람이 우리나라 북한산에서 식물채집을 하다가 털개회나무를 발견하고, 이 종자를 채취해 미국으로 가져가 대량 증식에 성공한다. 미스킴 라일락이라는 이름은 그 미국 관리가 한국에 있을 때 자신을 돕던 한국여성의 성을 따 지은 것이라고.

원추리도 그런 예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원추리를 가져다가 외국에서 신품종으로 개량한 수많은 품종에 입이 떡 벌어진다. 가격도 고가여서 어떤 신품종 원추리는 하나에 4~50만원을 호가한다. 앉은뱅이밀은 또 어떤가. 이 역시 우리 토종밀이다. 최근 슬로푸드에도 등재됐다. 이 앉은뱅이밀은 일본으로 전파돼 달마라는 품종으로 거듭나고, 이는 다시 미국 녹색혁명형 농법의 핵심종자가 된다. 2차 세계대전 후 인도,파키스탄 등 제3세계국가의 기아를 해결하는데 큰 기여를 한 품종이 바로 우리 밀이었다는 거다.

구상나무 [사진=한솔원예종묘]

◇ 전 세계인의 크리스마스트리 구상나무, 알고 보니 우리나라가 원산지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에는 우리나라 생물자원의 가치를 발굴하고 보존하고 널리 알리는 기관들이 존재한다. 국립수목원이 대표적이다. 국립수목원에서는 최근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1종 1속' 희귀종 식물인 미선나무의 대규모 자생지를 새로 발견했다. 그곳은 바로 강원도 원주. 미선나무는 열매 모양이 부채를 닮았다고 해서 부채 선(扇)자를 써서 미선(尾扇)이라고 불린다.

충북 괴산군에 있는 3곳의 미선나무 군락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북한에서도 `대성산 미선나무`로 명명돼 북한의 천연기념물 제 12호로 지정돼 있는 한반도에만 자생하는 식물이다. 국립수목원 DMZ산림생물자원보전과 길희영 박사는 “한반도에만 자생하는 미선나무의 대규모 자생지가 발견됨에 따라 기존 자생지와 함께 보전과 복원 연구에 더욱 힘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9년에는 산림청 국립수목원과 박완주 의원이 힘을 모아 국회에 미선나무 군락지를 조성했다. 국회도서관 뒤편에 미선나무 100그루를 심은 것. 충북 괴산에서 25년 이상 자란 미선나무 두 그루를 포함해 7년 이상 된 미선나무 100그루가 국회 경내에 심어졌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남북회담이나 관련 행사에 미선나무꽃이 자주 등장하면 더욱 뜻 깊을 것이라는 덕담도 나왔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원장 최영태)은 최근 우리나라 대표적인 멸종위기식물인 ‘광릉요강꽃'의 종자 발아를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이 꽃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만 분포하는 희귀 난초과 식물로 알려져있다. 

광릉요강꽃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위기 종(Dangered)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인공증식법이 개발되지 않아서 보전 대책 마련에 어려움이 있었던 종이다. 국립수목원이 지난 10여 년 동안 연구한 결과가 빛을 발한 사례라는 칭찬이 나오는 이유다. 국립수목원 손성원 박사는 “인공증식법 개발이 절실했던 광릉요강꽃이 이번 연구성과를 토대로 대량 증식 및 자생지 복원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의의를 밝혔다.

미선나무 [사진=국립수목원]

◇ 국립수목원, 미선나무 군락지 발견과 광릉요강꽃 종자 발아 성공

우리 식물자원으로 각종 질환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최근엔 토종 인진쑥에서 천연 항말라리아 물질을 추출하고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말라리아는 아프리카지역에서 매일 3천 명 이상의 어린이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원인이 되는 질병이다. 농진청은 이 기술에 대한 특허출원을 지난해 완료하고, 농업실용화재단을 통해 기술이전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농진청 정미정 생물소재공학과장은 “국내 바이오소재 기업들이 나고야 의정서 본격 시행으로 인한 채산성 악화를 걱정하고 있다. 농진청이 보존중인 농생명자원을 활용해 바이오소재 생산 기술을 적극 개발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환경부 소속 국립생물자원관(관장 배연재)은 자생식물 드렁방동사니 추출물의 피부세포 보호 효과를 확인하고 이를 화장품기업에 이전하기로 했다. 드렁방동사니는 ‘드렁’(논두렁)에서 잘 자라는 방동사니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남부지방 논 근처나 습지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이 풀에서 추출한 물질을 가공해서 화장품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드렁방동사니 추출물은 피부세포 실험에서 알레르기 유발물질인 히스타민 분비를 60% 정도 줄였으며, 알데히드화합물에 의한 세포 독성을 절반 이하로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피부장벽기능 개선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생물자원관은 화장품 중소기업 3곳과 지난 2월 드렁방동사니 특허 기술이전 계약도 체결했다. 올해 상반기 상용제품을 출시하고 미국과 일본 등으로 수출도 할 계획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전경 [사진제공=산림청]

◇ 농촌진흥청, 항말라리아 물질 추출 성공...국립생물자원관, 기업에 기술 이전 활발

국립수목원은 최근 산림생명자원관리기관에 대전 한밭수목원을 지정했다. 산림생명자원관리기관은 '농업생명자원의 보존·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공·사립수목원 중 식물보존현황, 전문관리 인력, 시설현황 등 엄격한 기준을 평가해 지정되는 전문연구기관. 산림생명자원관리기관으로 지정되면 국내·외 산림생명자원의 운영·관리에 대한 핵심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나고야 의정서 발효에 따라 국내 산림생명자원에 대한 안정적 확보와 효율적인 관리가 요구되고 있는 시점에서 시의적절한 결정이다. 한밭수목원 외에도 여주 황학산수목원, 경남 하동녹차연구소, 경상북도수목원 등이 산림생명자원관리기관으로 지정된 바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은 한국수목원관리원과 ‘식물유전자원의 생물다양성 보존, 자원 활용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국립농업과학원이 보존하고 있는 유전자원 총 18만 7천여 자원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씨드볼트(종자저장소)에 로 보존할 수 있게 됐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은 이번 업무협약으로 국가 차원의 식물 유전자원 장기 안전보존이 가능하게 됐다고 밝히고 공동연구를 통한 알찬 결과가 기대된다고 언급했다.

국립수목원을 비롯한 농촌진흥청, 국립생물자원관 등의 우리 생물자원(유전자원) 발굴, 보존, 산업화 노력은 앞서 언급했던 구상나무, 미스킴 라일락, 원추리 등의 해외유출 사례에 대한 현시점의 방패역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가치를 알지 못해 100년이 지난 후에야 이를 눈치 챈 크리스마스트리 구상나무의 사례는 두고두고 씁쓸한 교훈이 될 것이다.

생물자원 유출 방지와 더불어 이를 자원으로 개발하려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때는 바야흐로 ‘나고야의정서 시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