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 탄 '밀키트' 시장... 농산물 판매 전략 다시 짜야

2020-04-10  09:05:35     이병로 기자

코로나19가 산업의 판도를 바꿔 놓고 있다. 이번 주 삼성전자의 실적 발표가 있었다. 영업이익은 6조4천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 증가했다. 세계대전 수준이라는 경제난 속에서 나름 선방했다는 평가다. 반면 항공-자동차-정유 쪽은 국경봉쇄, 소비부진, 유가폭락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도산할 기업들도 있다는 흉문이 돈다. 

이 와중에 선전을 넘어 폭발적인 매출 증가를 보이는 기업도 있다. 온라인으로 먹거리를 파는 업체들의 실적이 눈에 띈다. 대표적인 게 ‘밀키트‘ 분야다. 

G마켓에 따르면 2월 19일부터 3월 2일까지 밀키트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전년 동기대비 310% 성장했다. SSG닷컴도 지난 2월 한달간 밀키트 판매량이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695% 증가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밀키트 기업인 마이셰프도 작년 월 평균 매출액이 3~5억 원 수준이었는데 지난 3월 매출이 20억 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적 격리 때문에 집밥이 늘자 밀키트 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농업에 위협과 기회가 공존하는 밀키트 시장. 성장세가 로켓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다. [사진=픽사베이]

밀키트는 밀(Meal, 식사)과 키트(Kit, 키트/세트)의 합성어다. 식사 세트라는 의미다. 각종 식자재를 손질해 개별 포장해 요리 방법이 적힌 레시피와 함께 배송해 준다. 예를 들어 스테이크를 주문하면 고기에 야채, 소스, 오일 등을 각각 포장해 도시락 박스 같은 용기에 담아서 배달해 준다. 그래서 쿠킹박스 또는 레시피 박스라고도 불린다. 가정간편식(Home Meal Replacement, HMR)의 일종인 반조리 음식이라고 보면 된다. 감바스 알아히요, 밀푀유나베, 더블체다 함박스테이크 같은 레스토랑 음식을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어 맞벌이 가정이나 독신들에게 인기가 많다. 

밀키트는 2007년 스웨덴에서 처음 시장에 나왔다고 전해진다. 그러다가 2012년 미국의 스타업 기업인 ‘블루에이프런’이 등장하면서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 국내에서는 2016년 '마이셰프', '프레시지' 등이 제품을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같은 해 7월에는 대기업으로는 최초로 동원 홈 푸드의 '맘스 키트'이 출시됐다. 이듬해인 2017년 9월에 한국야쿠르트가 '잇츠 온'을, 12월에 GS리테일이 '심플리 쿡'을 내놨다. 현재 국내 시장에는 CJ제일제당의 '쿡킷', 이마트의 '피코크 밀키트' 등이 합세하면서 대기업들도 점유율 확대에 뛰어든 상태다. 

밀키트의 장점은 간편함에 있다. 요리를 하기 위한 재료가 손질이 된 상태로 구매할 수 있다. 장보기와 요리하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 또한, 버리는 재료가 없어 오히려 비용이 적게 든다는 평가도 많다. 식구가 많지 않아서 한 번에 요리를 많이 해놓으면 다 먹지 못하고 버리게 된다. 특히 1인 가구가 늘어난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있다. 무엇보다도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재미와 흥미를 준다는 것도 매력 중 하나다.

반면, 비싼 게 흠이다. 대개 2인 기준 1만원을 넘으니 시장이나 마트에서 일일이 재료를 사다 해먹는 것보다는 확실히 비싸게 느껴진다. 대부분 냉장보관이라서 유통기간이 짧은 것도 약점이다. 운반과 포장 단계에서 불가피하게 늘어난 포장재 처리도 골칫거리다.

업계에서는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냉동 포장이다. ‘피코크’는 지난 해 12월 냉동 포장한 제품을 선보였다. 최장 1년까지 보관이 가능하기 때문에 원가 절감 효과와 유통망 확대로 인한 매출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밀키트 시장이 2019년 1700억 원 수준에서 2024년까지 8천억 원으로 커진다고 내다보고 있다. 국내 식음료 시장이 120조 원, 외식 시장이 180조 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결코 작지 않은 시장이다. 

아쉬운 점은 이들 밀키트 제품들은 원가 절감을 이유로 대부분 수입산 원료를 쓰고 있는 실정이다. 모 업체 관계자는 “국산 재료를 쓴 고기류 제품은 한 가지도 없다.”고 말한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업체들의 사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국산 농산물로 만든 ‘차별화’된 제품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값을 좀 더 치루더라도 한우나 한돈을 사먹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많은 사람들은 집밥 먹기에 적응했으므로 외식업이 원래 수준으로 회복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있다. 그 사이를 밀키트가 파고 들어 성장 중이다. 농업인들도 이 시장을 주목해야 할 이유다. [사진=마이셰프]

자조금이나 생산자 협회에서도 회원들의 의견을 받아 밀키트에 원료 공급하는 방식으로 판매처를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특별 가격을 만들거나 공동 프로모션으로 중소 밀키트 업체와 상생의 모델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일에 농협이 앞장서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대도시 농협들은 농민들의 판로를 뚫어주는 '경제 사업' 비중을 높여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밀키트 업체와의 협력 모델을 생각해 봄 직하다. 

외식업은 우리 농산물을 사주는 큰 거래처다. 이 거래처가 코로나19로 막대한 타격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집에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이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집밥 먹기에 적응했으므로 외식업이 원래 수준으로 회복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있다. 그 사이를 밀키트가 파고 들어 성장 중이다. 농업인들도 이 시장을 주목해야 할 이유다. 

<나이키의 상대는 닌텐도>라는 책이 있었다. ‘스포츠 웨어 나이키의 경쟁자는 아디다스, 푸마 같은 같은 업을 하는 기업이 아니다, 닌텐도 같이 집안에서 하는 게임기를 만드는 기업이야 말로 야외활동을 막아 나이키에 위협적이다, 경쟁은 같은 산업 내의 경쟁뿐 아니라 대체제도 감안해야 한다’는 게 책의 요지였다. 새롭게 생기는 시장에 기회가 있다. 판이 바뀔 때는 더욱 그렇다. 반면 기존 방식을 고수하면 위협이다. 대체재에 밀려 시장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우리 농업에 위협과 기회가 공존하는 밀키트 시장. 성장세가 로켓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다. 생산자 단체와 농정 당국은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을까? 분명한 것은 이제 외식업은 ‘나이키’이고  밀키트는 ‘닌텐도’가 됐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젊은 소비자들이 외국산 식재료에 입맛을 빼앗기고 있는 현 상황을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