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되는 농업-농촌의 난제들, 내년 국감에서 또 등장할까?

2019-10-21  00:29:00     이병로 기자

전 세계 경제에 쓰나미 급의 거센 파도를 몰고 다니는 미중 무역전쟁. 그리고 최근 불거진 한국과 일본의 무역분쟁. 게다가 발생 경로조차 파악이 되지 않고 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까지 덮친 대한민국 농업계는 그야말로 설상가상의 상황. 그렇다면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어떤 이슈들이 쏟아져 나올까?

와중에 제주도청 앞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사상 유례없는 강력한 태풍으로 농사를 망친 제주도 농민들이 국회 농해수위 국정감사장인 제주도청 앞에 모여 상복을 입고 시위를 벌인 것. 지난 15일 전농 제주도연맹 등 농민단체들이 제주도청 현관 앞에서 치켜 든 피켓에는 '근조 2019 제주농업 파산' 이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이들은 태풍이라는 자연재해로 한 해 농사를 포기해야만 하는 심정으로 그 자리에 모였다면서 “제주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정하든지, 아니면 그에 준하는 특별지원책 마련을 위해 국회가 백방으로 노력해야만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런 일이 올해만 일어났던 게 아니라는 점을 누구라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매년 아니 거의 수 십년 동안 그래왔던 게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들과 비슷한 종류의 시위들이 발생할 것이라는 답답한 상황에 도사리고 있다. 왜 그럴까? 정답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서글프다. 그건 바로 시스템을 만들고 규정하는 정부 그 중에서도 특히 농식품부, 농식품부 산하기관, 농협 등이 농민을 위한 제 몫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년 농림축산식품부와 산하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거의 똑같은 이슈가 반복 재생되고 있다. '쌀값 안정, 공익형 직불제 안착, 농산물 유통 혁신, 농촌 노령화 대책 부재, 좋은 농협. 농민을 위한 농협 만들기, 퇴직 고위공무원들의 산하기관 재취업 ‘관피아’ 문제' 등 연도만 바꿔 읽으면 재작년 국감인지 올해 국감인지 지난 해 국감 이슈인지 구분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똑같은 내용들로 차고 넘치는 게 우리 농업관련 국정감사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제발 농민을 위해 일하자” 라는 취지로 2019년 국정감사 현장의 이슈들을 모아봤다. 과거 국감 현안들과 내용이 똑같더라도 놀라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제발 해결할 일은 해결하고 버릴 것은 버림으로써 조금이라도 새로운 국정감사가 되길 기대해본다. 중요도나 일시와 상관없이 기관과 국회의원실이 배포한 보도자료와 관련 이슈들을 순서대로 살펴본다.

 

◇ 올해 산지폐기한 양파ㆍ마늘 폐기 비용만 100억 원이 넘는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김태흠 의원이 지난 10일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자. 농산물을 폐기처분하는 데 쓰인 비용에 놀랄 수 밖에 없다. 자료에 따르면 올해 과잉 생산된 양파. 마늘은 3만 7천 톤. 이를 산지폐기한 비용은 무려 118억원이었다. 양파가 3만 6천 여 톤으로 100억원 규모, 마늘은 908톤으로 22억원 어치가 우리 농촌의 밭에서 트랙터로 갈아엎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누구 책임일까? 늘 하는 얘기지만, 우리나라에도 농산물 생산 관측을 하는 기관이 있긴 하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그리고 통계청이 바로 그 책임주체다. 그런데 이들 기관은 매년 농민들이 산지폐기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듯 하다. 그런데 정말 이게 당연한 일일까? 예측 실패라는 행위도 마땅히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일 아닐까? 하지만 매년 거듭되는 농산물 산지폐기와 그 비용 몇 백억원이 쓰이는 걸 보면 책임이란 말이 무색하기만 하다.

어쨌거나 관련기관이 농산물 생산 예측에 실패함으로써 지난 5년간 산지폐기된 채소류는 약 37만 톤, 폐기 비용으로 450억원이 사용됐다. 물론 이는 국민세금이다. 이같은 문제를 제기한 김태흠 의원은 “올해 양파. 마늘 대란은 사실상 농식품부 등 정부의 수급정책 실패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를 계기로 생산량 예측시스템을 개선하고 수급대책을 전면 재정비해야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과연 그게 김의원 말처럼 될 지는 미지수다.

 

◇ "수입쌀은 국산으로, 묵은 쌀도 좀 섞고"... 쌀 부정 유통 늘어났다

수입쌀을 혼합해서 유통.판매하다가 적발된 건수가 최근에 늘어났다. 민주평화당 박주현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받은 지난해 ‘수입 쌀 부정 유통 적발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가 그렇다. 자료를 보면, 최근 4년 사이에 특히나 이 같은 일이 급증했다. 올해 2019년 상반기에만 모두 64건이 적발됐다.

우리나라는 1995년부터 2004년까지 수입쌀을 가공용으로만 수입했는데, WTO규정으로 일부 밥쌀 수입이 가능해졌고 마침내 2005년부터는 밥쌀 의무수입이 30%로 규정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보니 수입 쌀을 국내산으로 둔갑시키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양곡관리법은 국내산 쌀과 수입쌀을 혼합해 유통.판매하면 6개월 이내 영업 정지 또는 폐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사용·처분한 양곡을 시가로 환산한 가액의 5배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쌀 부정유통이 좀처럼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벌 규정을 담은 양곡관리법이 있는데도 수입 쌀을 국내산 쌀과 혼합하거나 생산연도가 서로 다른 쌀을 혼합해 판매하는 일이 꾸준히 벌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쌀 포장을 할 때 무농약 쌀, GAP, 지리적 표시 ,생산자 이력까지 표기함에 있어서 거짓표기와 미표시 사례가 여전히 적발되고 있다는 게 농식품부 자료엔 고스란이 나타나있다.

박주현 의원은 “처벌하는데도 수입쌀 원산지 표시위반이 횡행하는 것은 부정유통으로 인한 이득이 더 크다는 뜻이다. 쌀 유통시장 질서 확립을 위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면서, “최근 배달앱을 통한 음식주문이 증가하면서 이런 음식유통과정이 수입쌀 부정유통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국회에서는 국정감사가 열렸다. 그러나 연도만 바꿔 읽으면 재작년 국감인지 올해 국감인지 지난 해 국감 이슈인지 구분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똑같은 내용들로 차고 넘치는 게 우리 농업관련 국정감사의 현실이다. [사진=송영국 기자]

 

◇ “농가소득 5천만원 달성 임박 주장엔 농가부채도 포함됐나?”

농협중앙회 회장은 지난해 농가소득이 4천 207만원을 기록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최근 농협 국감장에서 그가 한 말이다. 그러자 자유한국당 김성찬 의원(창원 진해)은 “내년에 농가소득 5천만원 달성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증가요인 등을 뚜렷하게 제시해야 옳다”라고 반박했다.

그래도 농협중앙회 회장은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쳤고, 이에 무소속 손금주 의원(나주 화순)은 “5천만원이 갖는 의미가 대체 뭔가? 농가부채는 3천 327만원으로 24.5% 증가했다. 그런데도 농가소득 5천만원이 농민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농사만 지어서 벌어들이는 농업소득이 20년째 1천만원 초반대를 기록중인 우리 농촌. 여기에 농가소득 5천만원이라는 슬로건부터 내걸고 샴페인 터트리는 시늉을 하는 농협의 의도는 뭔가? 농민을 우롱하고 국민을 속이는 일 아니냐는 식의 국회의원들의 우회적인 비판에 귀가 쫑긋해진다.

농협이 농민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일한다는 지적이 임계점을 넘어선 형국이다. 그런 마당에 희망고문에 가까운 수치를 앞세우며 농촌과 농민과 국민의 시야를 가리는 농협의 이러한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농특위(위원장 박진도)에서도 ‘좋은 농협 만들기’라는 화두를 내걸었고, 이를 강기갑 전 의원이 맡아 진행중이다. 국민들과 농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농협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 “한국 농업은 10년 안에 붕괴될 것이다"... 왜? 일손 부족 때문에!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 농업은 10년 안에 붕괴될 것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아닌 다른 상임위 국정감사에서 나온 충격적인 발언이다. 지난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경북 상주의 한 농장 대표가 한 말이기도 하다. 그는 국정감사장에 나와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농촌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그는 “농촌에서는 대개 인력회사를 통해 근로자를 구하는데, 인건비가 엄청나게 인상됐다.”고 말하고, 외국인 근로자 쿼터제에 따라 농촌에 6400여명의 근로자가 배정된다는 질의에 “아니다. 그렇지 않다. 경북에만 5만명 이상이 필요하다”라고 대답했다.

농촌진흥청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하우스 농가는 절반가량이 인력부족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특수 작물 재배농가는 37.8%, 축산업 농가는 37.5%가 인력난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정에도 현재 농가에서 외국인을 고용할 경우, 농작 면적에 따라 1명에서 최대 5명까지만 고용할 수 있다.

임이자 의원은 “ 고령화 농촌에서는 특히나 일손이 많이 부족하다. 상주, 군위, 의성, 청송 이런 곳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외국인 인력배정도 쿼터제로 상한선이 있어서 농가보다는 법인에게 유리한 실정이다.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 "농업인, 일반산업 근로자보다 2.5배 더 다쳐..그럼에도 보험가입률은 최저"

농업·임업 근로자가 재해에 더 많이 노출돼있지만 보장받을 보험 가입률이 최저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8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그렇다. 자료를 보면 농업인 재해율이 전체산업근로자 재해율에 비해 2.5배가 높았다.

근로자 1만명당 발생하는 사망자수를 나타내는 비율(사망만인율)도 농림업 근로자들이 높았다. 농림업 근로자의 경우 2014년 3.52%에서 2018년 1.56%로 줄어들고 있지만, 전체 산업 근로자 2018년 1.12%에 비해서는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지자체가 1996년부터 정책보험으로 ‘농업인안전보험’과 ‘농기계종합보험’을 운용하고는 있기는 하다. 농업인안전보험 가입률은 2013년 55.8%에서 2018년 61.6%로 증가했다. 농기계종합보험은 2018년도 기준 가입률이 8%로 매우 저조했다. 농기계별로 살펴보면, 트랙터 21.5%, 콤바인 13.7%, 경운기 0.8%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영훈 의원은 “불의의 사고 시 농업인의 재산.신체 보상 수단으로서 농업인안전재해보험이 안전판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가입률이 낮은 것에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